국회-대학 “청와대서 가이드라인” 반발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올바른 로스쿨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가 22일 오전 청와대 앞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정부 로스쿨 안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올바른 로스쿨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가 22일 오전 청와대 앞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정부 로스쿨 안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교육인적자원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총입학정원을 기존 방안대로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국회 교육위원회와 대학,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교육위원회가 ‘재보고하라’고 교육부에 요구했는데도 원안을 고수하는 것은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총정원 바꿀 이유 없다”=교육부는 국회 총정원 재보고를 나흘 앞둔 22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기존 방안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와 대학의 거센 반발 때문에 총정원 증원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과 다른 것이다.

총정원 증원에 대한 법조계의 저항이 심하고 청와대가 ‘교육부의 총정원 결정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교육부가 독단적으로 총정원을 바꾸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교육부는 “법조계가 최대 1500명까지 양보하겠다고 했고 대학이 최소 2000명까지는 인정하겠다고 해 양쪽의 요구를 균형 있게 반영했다”고 밝혀 법조인력 수급 상황 등 정책적 고려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더 컸음을 시인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도 “교육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의 변호사 1인당 인구수가 1482명이라고 집계했지만 이 통계에 한국도 포함됐다”며 “한국을 빼면 153명이 줄어 2021년까지 OECD 평균에 도달한다는 교육부 주장도 허위에 불과하다”고 정치적 결정이었음을 지적했다.

▽대학·국회 반발=한국법학교수회와 전국법과대학장협의회는 이날 로스쿨 제도가 제대로 정립되려면 변호사 3000명을 배출하는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들은 “총정원 1500명은 법조인 대량배출을 기대한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청와대가 교육부의 결정을 옹호하면서 ‘특권법조’의 이익을 지키라고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동국대 정용상(법학) 교수는 “엄밀한 산정기준 없이 정치적으로 고려된 총정원을 대학에 강요하고 있다”며 “로스쿨 신청 보이콧 운동과 대국민 설득작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교육부가 26일에도 원안을 고집할 경우 또 한 차례 재보고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가기준 논란=법학교육위가 검토하는 로스쿨 인가기준에 사회적 책무성, 제재 전력 등 ‘대학 운영현황’이 포함돼 있어 설치 대학 선정에도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항목이 확정되면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을 잘 따른 대학은 점수를 높게 받지만 자칫 2008학년도 대입에서 정부가 권고한 내신 실질반영비율 30% 이하로 책정한 대학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내신 파동이 한창일 때 정부가 강조한 논리가 ‘대학의 사회적 책임성’이었고 당초 내년 3월로 예정됐던 로스쿨 설치 대학 선정이 1월로 앞당겨진 것을 보면 현 정권 임기 내에 정부 정책에 얼마나 협조했는지를 반영해 대학을 선정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학교 옮긴 법대 교수들 “내 자리 어떻게 되나”▼

교육인적자원부가 총정원 고수 방침을 고집하면서 로스쿨에 대비해 대거 자리를 옮긴 법대 교수들도 거취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교육부가 로스쿨 인가 대학 수를 총정원 2000명을 기준으로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경우에도 선정 대학은 43개 준비 대학 중 20개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균형발전을 감안해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14개 시도 중 고등법원 소재지를 중심으로 50∼100명 규모의 중소형 로스쿨이 안배되고, 수도권에는 100∼150명 규모로 10개 안팎의 대학이 선정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수도권의 로스쿨 준비 대학은 서울 19곳, 경기 4곳 등으로 절반 이상이 탈락 위기에 놓이는 셈.

국회 교육위원회 등에 따르면 각 대학의 로스쿨 유치 경쟁으로 올 2학기에 지방대에서 수도권 대학으로 옮긴 교수는 30여 명, 수도권 대학 내에서 이동한 교수는 4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로스쿨 총정원에 따라 선정 여부가 결정될 중상위권 사립대로 적을 옮긴 상태여서 당초 예상보다 적은 총정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판사 및 검사를 비롯한 저명 실무 경력자들이 높은 연봉과 정년, 연구 지원 등을 약속받고 로스쿨 유치가 유력한 상위권 대학으로 옮긴 것과 달리 경력 교수 중 일부는 비정년 등 기존 처우보다 낮은 조건으로 옮긴 경우도 있어 불안해 하고 있다.

신규 교수의 70% 이상을 다른 대학 교수에서 선발한 서울의 한 사립대로 옮긴 지방대 출신 A 교수는 “기존 교수 중에 전공이 같은 교수가 많아 강의를 배정받기도 쉽지 않았다”면서 “이 대학 정년 심사가 까다롭다는데 로스쿨 유치에 실패할 경우 정년 보장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靑 “로스쿨 지역할당 논의중”

“사개위 정원 합의는 안했다”▼

청와대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총정원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 자문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에서 ‘1200명 내지 1300명이 합당하다고 합의했었다’는 기존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며 수정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당시 사개위 회의에는 16명이 참석했고 로스쿨 총정원과 관련해 9명의 다수 의견에 7명의 소수 의견을 부기해 건의문을 작성했다”며 “따라서 이를 합의라고 했던 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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