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이용 논의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초등학생들 책상에는 으레 가운데 선이 그어져 있다. 짝꿍의 지우개나 연필이 경계선을 넘으면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왜 남의 ‘영역’을 ‘침범’했느냐고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에게는 ‘사적인 공간(private zone)’이 있다고 말한다. 누가 내 집 대문 앞에 차를 대 놓으면 기분 나쁘다. 내게는 주차할 차가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자기 영역에 민감한 마음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배설물 등으로 부지런히 자신의 구역을 표시하지 않던가.
논의를 영토 차원으로 넓혀 보자. 땅 문제는 외교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다. 대부분의 전쟁은 땅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생활공간(lebensraum)을 넓힌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조선을 침략한 이유는 ‘중국 대륙에 진출’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땅을 넓히는 일은 생각보다 이익이 적다. 광활한 러시아의 황무지에서 독일인들이 건질 것은 많지 않았다. 되레 지키느라 엄청난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1931년, 만주를 점령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만주는 일본인들에게 기회의 땅처럼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전선(戰線·전쟁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 넓어지는 부담만 안았다.
그럼에도 영토는 통치자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사람들은 땅 크기를 국력의 잣대처럼 여기곤 한다. 더구나 국토는 조국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상징이다. 히틀러는 아름다운 독일의 풍경을 보았다. 그러곤 “이것이 도이칠란트다!(Das ist Deutschland!)”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단다.
국토에 대한 가슴 먹먹한 감정은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남북한이 함께 쓰는 깃발에는 한반도의 모양이 그려져 있지 않은가. 독도가 우리를 흥분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라는 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느끼게 하는 데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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