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입력 2007년 10월 29일 03시 01분


지친 조국 신음하는 민중에게

때로는 시어로 때론 행동으로

희망을 목놓아 부른 시인

여러분의 가슴속에는 지금

어떤 꿈-열정이 꿈틀거리나요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詩)가/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밤의 가지에서,/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그건 건드리더군.’

지구 반대편, 그러니까 저 남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길고 긴 형태의 나라 칠레에 사랑과 혁명에 불타던 시인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원시적인 자연 환경이 살아 있는 ‘테무코’라는 작은 마을에서 비와 바람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기척도 없이 시가 자신을 찾아와 얼굴 없이 있는 자신을 건드렸기에 운명처럼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늘 사랑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으며, 사랑에 취한 마음을 언어로 되살린 시인이 되었죠.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살렸을 때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네루다는 ‘사랑’에 민감한 시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편에 녹아 있는 ‘사랑의 언어’를 사랑했고,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랑에 관한 시만 쓴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조국의 현실에 직접 뛰어들어, 혁명의 역사를 써내려가기도 했지요. 공직 생활을 하면서 민중을 이끌고, 미얀마 양곤에 머물면서 외교 업무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그가 머문 지상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먼지 낀 신발을 신고 거리로 나가 추운 이 땅을 훈훈하게 만들고자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을 자신의 노래로 말하고, 그들과 더불어 산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네루다는 자신의 시가 책 속에 묶여 있지 않고 지상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아이가 엄마한테 하듯, 눈물을 흘리며 호소합니다. “조국, 나의 조국이여, 그대의 빛을 돌보세요”라고요.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살 만한 모습인가요? 아니면 여러분은 아직 지상의 얼굴을 본 적이 없나요?

‘나는 본다. 로타의 탄광에서 흐느껴 우는 걸,/땅속 깊은 데 참담한 갱도에서 구멍을 뚫는/지쳐버린 칠레인의 주름진 그림자를, 죽는 걸,/사는 걸, 화석화한 鑛滓(광재-광석을 다듬고 남은 찌꺼기) 속에서 태어나/열심히 일하는 걸’

네루다가 가진 열정은 그의 언어와 행동으로 열렸으며, 세상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칠레의 어둡고 습한 곳에서 숨죽여 울던 사람들에게 그가 흩뿌린 언어는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울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희망 없이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내뱉는 그는 어쩌면 희망을 위해서 사랑을 했고, 희망을 위해서 시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의 시를 통해 희망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가슴에라도 희망이란 꿈을 심었다면 네루다 자신의 꿈이 실현된 것이요,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세상이 참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어때요, 여러분의 가슴에는 얼마만큼의 희망이 있나요?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는 몇 편의 사랑 시와 지상에서 머물며 그가 보고, 듣고, 만졌던 단순한 것들을 위한 시가 실려 있습니다. 시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랑과 절망이 함께 숨쉬고 있는 책이지요. 급작스레 찾아온 찬바람 속에 조금이라도 뜨거운 정열을 맛보고 싶다면 네루다가 펼쳐 놓은 시와 노래를 만나 보세요. 어쩌면 가슴이 뜨거워질지도 모릅니다. 또한 여러분이 노래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안고 첫 장을 넘기는 떨리는 순간에 도전해 보세요. 사랑이 깊은 가을입니다.

이승은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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