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靑 변양균 집무실에 직접 그림 설치

  • 입력 2007년 10월 31일 02시 07분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지 약 두 달 만에 신정아 씨가 변 전 실장의 청와대 집무실을 방문해 그림을 직접 설치해 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권세를 등에 업고, 변 전 실장은 신 씨의 출세를 돕는 등 역할분담하면서 각종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두 사람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신 씨가 청와대에 작품 설치=신 씨는 변 전 실장이 대통령정책실장으로 임명된 2006년 7월 이후 2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첫 번째인 2006년 8월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모 행정관의 안내로 청와대를 구경했다. 같은 해 9월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청와대 집무실에 영국작가인 존 버닝햄의 원본 작품을 설치했다.

신 씨가 학예실장으로 재직했던 성곡미술관의 존 버닝햄 전시회 이후 신 씨가 작품 한 점을 변 전 실장에게 선물로 건넨 것이다.

신 씨는 존 버닝햄 외에도 다른 유명작가의 복사본 작품 3, 4점도 변 전 실장에게 선물했다. 변 전 실장은 이를 모두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했다. 신 씨가 제공한 작품 4, 5점이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변 전 실장의 집무실을 채운 셈이다.

▽"예술을 모독한 '예술적 동지'"=변 전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신 씨를 통해 미술품 4점을 구입해 <<기획예산처에 전시하도록 했다.>>

당시 신 씨는 기획예산처에 해당 작품을 납품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그 가운데 4점 1세트인 '움직이는 고요' 중 1점을 자신의 오피스텔에 몰래 설치했다.

4개의 화면에 2개씩 담긴 농구공들이 관람자들이 걸어 갈 때마다 아래와 위로 움직여 공이 튀는 듯한 느낌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 것인데 1개를 빼면 작품의 완성도와 가치가 크게 훼손된다고 한다.

'움직이는 고요'의 작가인 윤영석 씨는 검찰에서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지 못하게 되어 상당한 정도의 가치하락을 초래하게 됐다"고 신 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도 "'예술모독'으로서 신 씨와 변 전 실장이 '예술적 동지 관계'라는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변 전 실장은 신 씨의 출세 도우미"=검찰은 변 전 실장과 신 씨가 권력을 남용하여 국가기관을 문란하게 한 사건으로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신 씨가 변 전 실장의 권세를 등에 업고 후원금 등을 모금했으며, 변 전 실장은 신 씨를 출세시켜 주고, 신 씨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례로 변 전 실장은 2005년 홍기삼 당시 동국대 총장을 만나 "신 씨를 교수로 채용하면 재정적으로 학교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신 씨의 허위학력이 문제가 돼 신 씨가 사표를 제출하자 변 전 실장은 홍 당시 총장에게 협박성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국대는 신 씨의 사표를 반려하고 휴직 처리했다가 소속을 교양교육원 교수로 변경해 복직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6월경 변 전 실장은 신 씨의 예일대 박사 학위가 가짜학위라는 것을 알고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되게 해 달라고 한갑수 이사장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검찰은 "허위학력으로 한국 최대의 문화예술제이자 국제적 행사인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정된 사실이 알려져 문화예술 애호가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국가위신까지 손상했다"고 밝혔다.

▽신 씨 도피 배후 규명 등에는 실패=검찰은 신 씨가 7월 미국으로 도피한 전후로 변 전 실장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파악했다.

그러나 변 전 실장이 신 씨의 도피를 방조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 변 전 실장과 신 씨 모두 "일상적인 대화였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또 신 씨의 미국 내 계좌에도 제3자가 도피자금을 입금시킨 흔적 등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신 씨의 재정적인 후원자는 검찰 수사결과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신 씨가 성곡미술관의 기업체 후원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2억1600만 원을 횡령한 돈으로 호화판 생활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신 씨는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는데도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고급 명품의류를 입고, 특급호텔을 수시로 이용해 그동안 누군가가 신 씨를 후원할 것이라는 의혹에 시달렸다.

이 밖에 올해 2월 스페인에서 개최된 아르코 아트페어 행사의 큐레이터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변 전 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한국화랑협의회 회장과 2006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등이 신 씨를 추천한 것이지 다른 외압이나 청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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