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비무장지대(DMZ) 철책에서 가까운 강원 인제군 서화면 가전리의 한 비포장도로. ‘지뢰’ 경고판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정부 학계 시민단체 등 30여 개 기관 및 단체에서 온 ‘DMZ 일원 생태계보전대책 민관 공동협의회’ 참가자들의 시선은 뱀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인북천으로 집중됐다.
DMZ 일대 자연생태를 연구해 온 서울대 김귀곤(조경학) 교수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보전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 멸종위기 67종 포함 2700여 종 생태계 보고
멸종위기에 처한 67종을 포함해 2700여 종의 야생 동식물이 자생하는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DMZ 일대가 최근 남북 화해무드를 타고 개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DMZ와 인접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개발계획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발 기대감이 커지면서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북쪽 땅까지 투기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DMZ와 그 주변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전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갖가지 난관에 부닥쳐 진전이 없는 상태다. 2007 남북 정상회담 의제로도 제출됐으나 북측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이 검토되는 지역은 남방한계선∼민통선의 폭 5∼20km의 1370km² 및 민통선 접경지역 6216km² 등. 향후 남북 경제협력이 확대되면 DMZ 생태계의 부분적 훼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보고 있다.
○ 지자체 “보전만 하기보단 생태 활용을”
여러 지자체가 DMZ 주변 개발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임진강변 민통선 안쪽 지역인 장단반도 35km²를 생태공원으로 지정하려다 군 당국의 반대로 2004년 사업을 중단한 경기도는 다른 DMZ 평화생태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11년까지 210억 원을 들여 경기 파주시 위쪽 민통선 부근에 ‘DMZ 평화생태공원’(가칭)을 만들고 생태관광코스를 개발해 낙후된 경기 북부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군부대 초소와 군사도로를 최대한 활용해 민통선 이북, 장기적으로는 DMZ 철책 안쪽까지 탐방코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DMZ 일대를 보전만 하기보다는 잘 보전된 생태를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가 말했다.
강원 인제군은 서화면 서화리 일대에 ‘DMZ평화생명동산’을, 민통선 안쪽인 가전리에 생태교육장과 생태탐방로를 각각 2009년까지 조성할 방침이다. 또 강원 화천군은 수달이 서식하는 ‘평화의 댐’ 상류에 습지센터를 건립해 DMZ 생태관광으로 외부 관광객을 끌어 모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토지소유 현황도 파악 안 돼 난개발 우려”
하지만 전문가들은 DMZ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기초조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사가 이뤄져야 DMZ 및 민통선 지역을 보전할 지역과 개발할 지역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 반세기가 넘도록 체계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은 “정부도 지자체도 민통선 내 토지이용 실태와 소유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상태에서 개발을 시작하면 난개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조만간 회의를 소집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지자체의 개발 욕구가 워낙 강해 ‘생태’ ‘평화’ 등의 이름으로 개발을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DMZ 일대는 보전을 중심으로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면서 “지자체들이 충분한 협의 없이 개발 계획을 밝힐 경우 이 주변 주민들에게 잘못된 기대감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제=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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