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수사 초기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말했고 청와대가 여러 차례 “참여정부에 권력형 비리는 없다”고 공언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수사 결과다.
신 씨와 각별해진 2003년 10월 이후 기획예산처 차관과 장관, 대통령정책실장으로 승승장구한 변 전 실장은 지위가 높아지면서 신 씨에게 점점 더 많은 특혜를 제공했다.
일례로 변 전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인 2005년 1월∼2006년 7월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건설에만 2억4000만 원을 성곡미술관에 후원토록 했다.
그러나 경제부처와 민간경제주체의 활동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정책실장으로 승진하면서 다른 기업들에도 후원할 것을 요구했다. 대우건설뿐만 아니라 산업은행 포스코 시중은행 등 무려 10개 기업에 성곡미술관에 6억1325만 원을 추가로 후원하도록 한 것.
또 변 전 실장이 신 씨와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흥덕사와 보광사 등에 특별교부금 12억 원을 편법 지원하도록 지시한 것에 대해 검찰은 “사적인 목적에 직무상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정부의 재정 기반을 위태롭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이번 사건을 ‘요구형 뇌물수수 사건’으로 규정했다. 일반 뇌물사건처럼 뇌물 공여자가 청탁을 하면서 뇌물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막강한 지위에 있는 변 전 실장이 먼저 뇌물을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 전 실장은 기업체에 후원금을 요구할 때도 직접 기업체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서 후원금을 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처럼 외압을 행사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범행은 사실상 갈취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돈을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빼앗겼기 때문에 해당 기업체 관계자는 형사처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는 변 전 실장이 구속기소된다는 사실이 보고 됐지만 참석자들은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 사건 자체를 빨리 잊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대통령정책실장이 청와대의 제3인자인 만큼 권력형 비리라고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공직자 처신에 아픈 경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검찰이 이번 사건을 권력형 비리라고 규정했으니 그 실체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마무리하지 말고 모든 관련 의혹을 좀 더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청와대 스스로 권력형 비리에 대한 감찰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도 “청와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 권력자들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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