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계획’ 비중이 ‘기존 실적’의 두배

  • 입력 2007년 10월 31일 03시 12분


“정원을 확대하라”‘올바른 로스쿨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로스쿨 총정원의 확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정원을 확대하라”
‘올바른 로스쿨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로스쿨 총정원의 확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영욱 기자
교육인적자원부가 30일 발표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인가 심사기준은 교육과정과 교원 등 교육 내용에 대한 평가에 배점의 절반 이상이 할애됐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대학들이 과도한 출혈 경쟁을 한다는 지적에 따라 기존 실적보다는 향후 운영 계획 등에 비중을 높인 것도 주목된다.

하지만 당초 인가 기준 검토 방안에 없었던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사회적 책무성 등의 항목이 포함된 것은 대학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려 심사 과정에서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가 기준 어떻게=법학교육위원회가 한 달여의 심사를 거쳐 확정한 인가 기준은 9개 영역, 66개 항목, 132개 세부 항목에 걸쳐 1000점 만점으로 이뤄졌다.

영역별 배점은 교육과정이 345점으로 가장 높고 교원 195점, 학생 125점, 교육시설 102점, 입학전형 60점, 재정 55점, 대학 경쟁력 및 사회적 책무성 48점, 교육목표 40점, 관련 학위과정 30점 등의 순이다.

기존 검토 안에서는 교육과정 290점, 교육시설 125점, 재정 100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교육 내용에 대한 평가가 강화됐다.

대학들의 과잉 투자를 막기 위해 실적에 대한 배점(30.9%)보다 향후 계획에 대한 배점(61.1%)을 높였다.

국제화 평가 지표는 외국어 강의 수(10점)와 교원의 외국어 강의 능력 적합성(10점) 등으로 구체화했다. 여성 교수 채용 실적 및 3년간 채용 계획(10점)도 포함돼 각 대학의 여성 교수 채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약자’ 배려 차원에서 장학생 비율(30점) 및 사회적 취약계층 장학금 배려 정도(25점)도 비중 있게 평가하기로 했다.

인가 기준에는 △여학생 휴게실 및 육아시설 설치 여부(4점)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조사·반영하는 제도 마련(3점) △법학전문사서 1급 자격증 소지자 확보(3점) 등 이색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로스쿨법과 시행령에서 규정한 항목들은 합격·불합격(Pass·Fail) 제도를 도입해 반드시 지키도록 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등 논란=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사법시험 합격 실적과 대입 관련 제재 조항이다.

교육부는 학교 서열화 우려에 따라 사법시험 합격 실적을 인가 기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해 왔지만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학생 영역에 ‘법조인 배출 실적’을 신설했다.

2003∼2007년 사법시험 연평균 합격자 수와 법학과 졸업생 대비 합격자 수가 각각 15점과 10점씩 적용된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2∼2006년 사법시험 합격자는 서울대(34.3%), 고려대(17%), 연세대(11.2%) 등 서울 소재 7개 대학이 전체 합격자의 80%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사법시험 합격자가 거의 없는 상당수 지방 사립대의 반발이 예상된다.

5년간 사법시험에 한 명이 합격한 지방대의 총장은 “현재 대입 구조에서 지방대가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며 “이 기준을 넣은 것도 잘못이지만 25점이나 배점한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사회적 책무성을 근거로 2005∼2007년 대입 관련 행정·재정 제재 실적에 4점을 배점한 것은 상위권 대학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 한 사립대 관계자는 “뒤늦게 이 항목을 추가한 것은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높이지 않은 대학을 제재하겠다는 의도”라며 “정원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본격 레이스 시작=대학들은 당초 정부의 총입학정원 2000명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로스쿨 집단 보이콧 등을 선언했지만 정부가 인가 기준을 발표하고 일정을 강행하면서 결국 로스쿨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각 대학은 11월까지 인가 신청을 마치는 한편 이날 발표된 인가 기준에 맞춰 교원 확보와 교육 과정안 마련 등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부 대학은 인가 기준 발표 직후 회의를 열어 자체적으로 점수를 매겨 보는 등 인가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권역 분류 희비 엇갈려

교육인적자원부가 로스쿨 인가 기준을 발표하면서 선정 원칙으로 제시한 ‘5대 권역 분류’에 지역별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유기홍 의원이 최근 취합한 로스쿨 준비 대학을 5대 권역에 따라 분류하면 △서울 권역 26개교 △대전 권역 7개교 △대구 권역 3개교 △부산 권역 5개교 △광주 권역 6개교 등이다.

이에 따라 서울 권역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묶인 대학들은 자칫 경쟁에서 밀려 탈락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지역 균형을 강조해 불이익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준비 대학의 절반이 넘는 26개교가 같은 권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소재의 21개 대학은 정부가 인접한 경기와 인천뿐 아니라 강원까지 서울 권역으로 묶은 것은 서울 소재 대학을 조금 뽑으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반면 대구와 부산 권역처럼 상대적으로 지역이 좁은 곳은 경쟁 대학이 적어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에 비해 대전 권역과 광주 권역의 대학들은 대구와 부산 권역을 따로 분류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대전이나 광주 권역의 대학 수와 대구, 부산 권역을 합친 대학 수가 별 차이가 없는데도 영남권만 두 권역으로 나눈 것은 사실상 ‘특혜’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 균형 선발을 강조했던 것에 한껏 고무됐던 지방대들은 발표 결과를 보고 다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날 교육부는 “설치인가 대학 선정 시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하겠지만 심사 결과 로스쿨을 설치·운영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특정 권역 내에서) 선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학들은 대체로 교육부가 ‘권역당 최소한 몇 개 이상’ 또는 ‘서울 권역은 ○개, 대전 권역은 ○개’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아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광주 권역의 한 대학 총장은 “권역별로 일정 수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역 거점 국립대가 로스쿨을 독차지하는 만큼 권역별로 2, 3곳은 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로스쿨 선정 위한 5대 권역 분류 및 준비 대학 현황
고등
법원
소재지
권역
해당 지역
로스쿨 준비 대학학교 수
서울서울 경기
인천강원
강원대 경원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국민대
단국대 동국대 명지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숭실대 서울시립대아주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천대
인하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홍익대
26개교
대전대전 충북
충남
배재대 선문대 청주대 충남대 충북대 한남대 호서대7개교
대구대구 경북경북대 영남대 한동대3개교
부산부산 경남
울산
경상대 동아대 부산대 부산외국어대 영산대5개교
광주광주 전북
전남 제주
서남대 원광대 전남대 제주대 전북대 조선대6개교
자료: 교육인적자원부, 유기홍 의원


▲ 동영상 촬영 : 변영욱 기자

■ 대학-시민단체 반응

교육부가 발표한 로스쿨 인가기준에 대해 대학들은 교육 부문의 평가 비중을 높인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구체적인 평가 지표는 허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 대규모 대학과 지방 소규모 대학 간에 똑같은 지표가 적용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은 교육부가 발표한 인가 기준이 그동안 검토해 온 안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존처럼 준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 대학은 입시 관련 행정·재정 제재 내용을 포함한 것에 대해 “로스쿨 교육 목표와 무관한 항목으로 여전히 대학을 규제하려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무부학장은 “재정과 시설 등은 국립대가 사립대에 비해 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데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지방대 사이에는 입학 정원 50명 규모의 ‘미니’ 로스쿨을 염두에 둔 곳도 많아 인가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는 의견도 나왔다. 총정원 규모에 따라 인가 기준도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것.

시민, 사회단체들은 인가기준 발표와 더불어 교육부가 이날 로스쿨 총정원 2000명의 변경은 없다고 거듭 밝힌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 동영상 촬영 : 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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