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한유리]취업도구 전락한 이중전공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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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듣는 전공수업의 교수님께서 상경대 수업이 전교생의 교양과목이 된 지 오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비(非)상경계열의 많은 학생이 취업을 위해 경영학을 이중전공 혹은 부전공으로 선택한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수업을 원하는 학생이 늘어나므로 상경계열 수업의 수강신청은 해마다 어려워져만 간다.

선진국 대학에서는 이중전공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 학제 간 융합이 좀 더 자유롭기도 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데 필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대부분의 학생이 취업을 목적으로 경영학을 이중으로 전공하는 국내 대학의 현실과는 성격이 다르다.

작년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보니까 대부분의 학생이 이중전공제도를 활발히 활용했다. 우리처럼 상경계열을 이중전공으로 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건축미술과 종교심리를 함께 고르는 등 색다르고 엉뚱해 보일 수 있는 조합으로 이중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단지 하고 싶어서, 원해서 공부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영국에서 돌아온 지난 학기부터 나는 비교문학과 관련된 수업을 듣는다. 1주일에 책 1권을 읽고 이른바 ‘쪽글’을 제출하며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철학자’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 매주 읽어야 하는 이론서는 한글로 쓰여 있다. 내 인문학적 지식이 빈곤해서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생전 눈길조차 주지 않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일 역시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다.

어떤 친구들은 오로지 취업만을 위해 원하지 않는 상경대 수업을 듣느라 고생한다. 이중전공 학점을 채우느라 졸업 시기를 미루는 친구도 많다. 그들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갑갑하다. 장기화된 청년실업 문제가 이제는 학생의 전공 선택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셈이다.

왜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을까? 취업을 위한 도구로서의 이중전공이 아니라 학제 간 융합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한유리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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