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세청장은 “관행에 따라 업무 보조비로 돈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언론들이 너무 빠르게 나가지 말라.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뒤 검찰 청사 입구로 향했다.
▽신중 또 신중=전 국세청장의 강한 부인과 현재의 신분을 고려한 듯 검찰은 전 국세청장의 조사 상황과 관련해 최대한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5시 반경 전 국세청장 조사 분위기를 알려 주면서도 “절대적인 조사 시간이 부족하고 수사에 지장을 줄 수도 있어 구체적인 분위기를 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동민 부산지검 2차장은 “그래도 지금 전 국세청장은 현직 아닌가. 조사 전 전 국세청장과 차 한 잔 하면서 간단하게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충분한 예우를 갖췄음을 분명히 했다.
정 차장은 수사와 관련해 전 국세청장의 신분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신분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슨 리트머스 종이처럼 색깔이 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날 “전 국세청장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하지만 피의자로 신분이 바뀔 수 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말한 것과 비교할 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또 전 국세청장과 정상곤(53·구속기소)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의 대질신문과 관련해서도 “처음부터 대질신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처음에는 인정심문 등을 거친 뒤 그 뒤에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 (대질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개 속 수사 방향=검찰은 정 전 청장의 ‘6000만 원 상납 진술’이 알려진 지난주부터 말을 아끼면서도 간간이 전 국세청장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비쳐 왔다.
그러나 이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전 국세청장의 모습은 전 국세청장의 소환 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청와대가 전 국세청장이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전 국세청장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기 전에 사퇴를 종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힌 것도 검찰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직 국세청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처음 소환한 검찰도 선택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지 않음은 마찬가지다.
정 차장이 “전 국세청장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충분히 해명을 하면 어찌 되느냐”는 질문에 “인정하든 부인하든 관계없이…”라며 전 국세청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 수순을 밟을 만큼 수사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전 국세청장 소환 전까지만 해도 전 국세청장의 형사 처벌 관측에 무게가 실렸지만 이날 하루 종일 조사가 진행되고 검찰의 특별한 태도 변화 없이 전 국세청장이 귀가하면서 상황은 다소 다르게 전개됐다.
▽오후부터 본격 조사=전 국세청장은 이날 출두 예정 시간보다 50분 정도 늦은 오전 10시 52분경 검은색 에쿠스 관용차를 타고 부산지검 2층 현관 앞 포토라인에 섰다.
검은색 계통의 양복에 연두색 넥타이를 한 전 국세청장은 잔뜩 굳은 표정에 하늘색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
전 국세청장 출두 현장에는 국세청 직원 20여 명이 미리 나와 있었으며, 부산지검 직원들과 검찰청사 맞은편 법조타운 직원들도 부산지검 청사 앞에서 이뤄지는 전 국세청장의 검찰 출두 장면을 지켜봤다.
전 국세청장의 출두에 앞서 시민단체인 활빈단 회원 4명은 부산지검 입구에서 ‘고질적인 탈세 비리, 뇌물 상납 고리 근절, 국세청장 구속 수사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 및 검찰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부산=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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