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21세기 한국을 웅변할

전혀 다른 대표 건축물

이제 하나쯤 지었으면

북한의 평양과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민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가장 아름답게 꾸미는 까닭이란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도쿄역과 서울역, 베이징역은 서로 닮은꼴이다. 뻗어나가는 제국의 힘을 역사(驛舍·역으로 쓰는 건물)의 모습으로 보여 주려는 시도라 하겠다.

더 나아가 보자.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가 떠오르고, ‘중세 유럽’ 하면 성당이, ‘고려시대 건물’ 하면 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처럼 한 나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그 나라와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부분을 압축해 보여 준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건축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우리나라 대도시에 랜드 마크(land mark·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표지)가 될 만한 건물들을 손꼽아 보자. 커다랗고 멋있게 지은 건축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건축하는 데 돈이 많이 든 데다 그 상징성 때문에 허물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일단 예술 관련 건물들은 우리나라의 랜드 마크가 될 수 없다. 1970년대에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은 말 그대로 ‘회관’ 냄새가 강하다. 1990년대에 지어진 예술의 전당은 어떤가? 아름다운 건물이지만, 서울 구석진 자리에 비행접시처럼 어정쩡하게 떠 있다.

우리네 도시에서 생활 한가운데 자리 잡은 대표적인 건물들은 당연히 상업 건축이다. 높다랗게 솟은 멋진 건물들은 하나같이 사옥이거나 업무용 빌딩이다. 대한민국은 무역으로 일어선 나라다. 산업으로 성공한 나라답게 건물들의 용도도 그쪽일 수밖에 없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겠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의 아파트를 가리켜 ‘키치(kitsch)’적이라고 평한다. 키치란 조악한 모조품이라는 뜻이다. 에펠탑을 어설프게 흉내 낸 서울 제2 롯데월드의 맨 처음 설계 모양새를 떠올려 보라. 새로운 서울시청 또한 항아리 모양으로 지으려다가 퇴짜를 맞지 않았던가.

우리 건축에는 ‘문화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느껴진다. 큰 건물을 지을 때면 으레 서양의 문화코드를 흉내 내거나, 전통을 살리겠다며 기와와 부채, 탑 등을 본뜨려 한다. 이래서는 키치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피할 수 없다.

문화라는 ‘가면’을 씌우려 하지 말고 건물의 원래 의도를 당당하게 드러내면 안 될까? 경제와 무역에 ‘다걸기(올인)’하는 나라답게 그 절박한 의지를 건물에 표현하자는 말이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자가 정해졌단다. 56만 여 m²에 28조 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공사다. 150층짜리 빌딩 건설도 예정되어 있다. 21세기 한국 건축의 이정표라 할 만한 큰 사업이다. 부디 키치적 취향에서 벗어난 국적 있는 건축 디자인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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