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헬보이’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영화 ‘헬보이(Hellboy)’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04년 작입니다.

기괴한 이미지와 음울한 공기, 그리고 종말론적인 메시지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그런데 주인공 헬보이는 좀 이상야릇한 존재입니다.

지옥에서 온 악당들을 무찌르는 정의의 수호자이면서도, 그의 외모는 어떤 악마보다 끔찍하기 이를 데 없으니 말입니다. 붉은색 피부에다 날카롭게 잘려 나간 두 개의 뿔.

헬보이의 무시무시한 외모 속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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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이기는 건 오로지 자유의지… “난 선택했어”

[1] 스토리라인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수세에 몰린 독일 나치는 과학과 마술을 이용해 전세를 역전시킬 음모를 꾸밉니다. 러시아의 마술사 라스푸틴의 주문을 통해 지옥의 문을 열고 악마 ‘자하드’를 깨어나게 하려는 것이죠.

이 정보를 입수한 연합군은 라스푸틴이 지옥의 문을 여는 순간 현장을 급습해 저지합니다. 하지만 아뿔싸!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옥의 문이 잠시 열려 있는 동안 지옥의 아들인 ‘헬보이’가 튀어나온 겁니다. 어린 헬보이는 악마를 연구하는 ‘브룸’ 교수에게 입양돼 아들과 같은 존재로 키워집니다.

그 뒤 60년이 흐름니다. 건장한 용사로 성장한 헬보이는 지구를 유린하려는 지옥의 괴물들에 맞서는 ‘선(善)의 수호자’가 됩니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로 추방되었던 마술사 라스푸틴이 부활합니다. 그는 ‘지옥의 사냥개’인 괴물 ‘사마엘’을 시켜 세상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는가 하면, 가학과 피학을 즐기는 변태적 성향의 부관 ‘크레넨’을 앞세워 다시 지옥의 문을 열 계획을 세웁니다.

지옥의 문을 열 열쇠는, 알고 보니 헬보이 자신이었습니다. 헬보이의 커다란 오른팔은 지옥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였던 것이죠. 라스푸틴은 헬보이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여성 ‘리즈’를 붙잡고는 “지옥의 문을 열지 않으면 리즈를 없애버리겠다”고 헬보이를 협박합니다.

헬보이는 마지못해 지옥의 문을 엽니다. 아, 이제 지구는 멸망을 맞이할까요? 아닙니다. 헬보이는 마음을 돌립니다. 그는 어느새 자라난 자신의 두 뿔을 제 손으로 꺾어 버린 채 지옥의 문을 스스로 닫습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헬보이는 참 괴상망측한 데다 복잡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내면에 선과 악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죠. 당초 악마로 태어났지만 브룸 교수의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선한 인간의 심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면 그저 우스꽝스러운 장면 같지만, 알고 보면 정말 중요한 장면이 있는데요. 잘라 낸 자신의 뿔이 더 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헬보이가 습관처럼 뿔을 깎아 내는 모습입니다. 마치 남자들이 매일 아침 면도를 하듯 헬보이는 뿔을 갈아 내죠.

뿔은 ‘악마’의 상징물입니다. 결국 헬보이는 자신의 악마적 본성을 억누르면서 인간의 선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포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악마의 유전자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려고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헬보이는 ‘반영웅(反英雄)’, 즉 ‘안티히어로(antihero)’입니다. 정의롭게 태어나 정의롭게 활동하는 일반적인 영웅들과 달리,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삐딱한 영웅’ 말입니다.

이젠 알겠습니다. 헬보이가 왜 지옥의 악마들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지를…. ‘악마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저주스러운 태생을 부정하기 위해, 그리고 그 자신 인간의 선한 마음을 가졌다는 존재증명을 위해 헬보이는 더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겁니다.

[3] 더 깊이 생각하기

지옥의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자라나는 헬보이의 두 뿔. 그러나 다시 제 손으로 뿔을 거머쥐고 뚝 꺾어 내 버리는 헬보이의 모습은 진정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보이는 뿔을 잘라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선택했어!”

이겁니다. 선택(choice).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어입니다.

악마로 태어났기에 다시 악마로 되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destiny)’을 거부한 헬보이. 그는 스스로의 ‘자유의지(free will)’로 뿔을 꺾어내고 인간의 선한 삶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선택이지요.

헬보이의 친구인 미국연방수사국(FBI) 요원 ‘마이어스’는 영화가 끝날 무렵 이렇게 읊조립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그건 인류의 기원도 탄생의 비밀도 아니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바로 ‘선택’이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

그렇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세상에 살게 된 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뜻에 따른 것이니까요. 하지만 ‘인간이 이 땅에서 멸망해 사라져버릴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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