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2008학년도 입시에서 최종 합격자 10명 중 1명은 ‘인성면접’을 거치는 과정에서 당락이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점수는 높지만 표현력, 비판적 사고 등이 부족한 일부 학생은 탈락한 반면 점수가 낮아도 창의성이 돋보인 학생은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학은 신입생을 뽑을 때 종합적인 능력과 인성을 중시한 면접을 통해 합격, 불합격을 결정한 전례가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KAIST 특유의 새 면접 방식이 다른 대학 입시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표현력-비판적 사고-창의성’ 주요 변수로
KAIST는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이 대학 지원자 14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5∼27일 인성면접을 치러 750명의 최종 합격자를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KAIST 관계자는 “합격자의 성적과 면접 점수 등을 분석한 결과 최종 합격자 중 10%에 가까운 70여 명은 인성면접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성적은 자신보다 높지만 면접 점수가 낮은 70여 명의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올해 KAIST는 지원자의 내신 성적, 각종 대회 입상실적, 교사추천서 등을 점수화한 ‘서류성적’(1000점 만점)을 가로축으로, 그룹토의 개별면접 개인과제발표를 포함한 ‘인성면접 점수’(9점 만점)를 세로축으로 놓고 ‘2차원적 평가 방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정했다.
성적 이외에 수험생의 창의성 리더십 사회성 동기부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올해 4월 도입한 인성면접은 이번 신입생 선발에 처음 적용됐다.
KAIST에 따르면 A과학고에 재학 중인 B 군은 1000점 만점의 서류심사에서 780점을 받았지만 9점 만점인 면접시험에서 2.7점을 받아 불합격했다. B 군은 인성면접 결과 “대인(對人) 역량과 표현력이 부족하고 비판적 사고와 생각의 유연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자립형사립고인 C고에 재학 중인 D 군은 서류심사 점수는 400점이었지만 면접에서 8.7점을 받아 합격했다. D 군은 인성면접 중 개인과제 발표 때 연극으로 자신을 표현해 창의성 점수를 높게 받았다. 또 강한 리더십, 적극적이고 논리적인 표현 능력도 높이 평가됐다.
이 대학 관계자는 “B 군은 국내 최고 수준의 과학고 출신이고, 서류 점수도 예년 합격선(600점)을 크게 넘어 인성면접이 없었으면 당연히 합격했을 것”이라며 “바뀐 면접제도가 당락의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대학에 인성면접을 도입한 주인공은 최근 테뉴어(tenure·정년보장) 심사 강화 등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서남표 총장이다.
서 총장은 “성적만을 기준으로 하는 입시로는 20년 뒤 한국을 먹여 살릴 창의성 있는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제도를 도입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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