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쌈짓돈’ 된 재량사업비=전주지검은 8일 담당 공무원에게 “재량사업비 공사를 맡길 때 나와 협의해 건설업체를 선정하라”고 요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임실군의회 정모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의원은 관내 공사 10여 건(1억4000만 원 상당)을 자신이 사실상 운영하거나 관련이 있는 업체에 공사를 몰아주도록 담당 공무원에게 요구한 혐의다.
이럴 경우 대부분 공무원들은 재량사업비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합의해 책정한 예산이고 예산 감사 조사권이 있는 지방의원에게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사실상 의원이 요구하는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맡기게 된다고 한 공무원은 밝혔다.
전국의 대부분 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이 같은 재량사업비를 편성하고 의원들은 재량사업비 공사업체 선정에 직간접으로 간여해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간 ‘예산 나눠 먹기 전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 의원은 재량사업비 공사를 따내기 위해 회사를 설립하기도 하고 친인척이 운영하거나 잘 아는 회사에 맡기는 대신 리베이트를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량사업비란=자치단체장이 예산 내용을 확정하지 않고 범위 안에서 말 그대로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말한다. ‘포괄 사업비’나 ‘주민 숙원 사업비’, ‘풀(pool) 사업비’로도 부른다.
단체장들은 자신을 견제하는 의회 의원들을 무마하고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이중 일부를 떼어내 의원들에게 할당해 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등에 따르면 전북도 2007년 예산 중 도의원들에게 배정된 재량사업비는 모두 190억 원으로 의원 1인당 5억 원씩이 책정됐으며 임실군은 의원 1인당 1억 원(의장은 2억원)이 책정됐다.
또 전국 지자체의 89%에 달하는 205곳에서 올해 재량 사업비를 책정했고 총액이 400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005년이나 작년에 비해서도 500억 원가량 높게 책정된 금액이다.
재량사업비는 배수로 정비나 농로 포장 공사 등 지역구에서 필요로 하는 소규모 사업에 통상적으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1996년까지 ‘소규모 주민 생활 편익 사업비’라는 명목으로 시군구별로 기준액을 명시해 지침을 시달했던 행정자치부는 감사원에서 재량사업비 책정과 집행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폐지를 권고한 뒤 관련 지침을 삭제했다.
전북도도 재량 사업비를 둘러싼 지적이 일자 올해 1인당 5억 원씩이던 도의원 재량사업비를 2008년 예산에서 1인당 4억 원으로 1억 원씩 줄이기로 도의회와 협의했다.
민노당 관계자는 “주민 숙원 사업 등의 명목으로 예산을 뭉뚱그려 올릴 것이 아니라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토대로 예산을 심의해야 한다”며 “특히 집행부와 의회가 서로 봐주기 식 유착 관계를 형성해 예산을 나눠먹는 재량사업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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