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인간의 삶을 계절에 비추어 봅니다 어린 시절을 봄에, 청춘의 시절을 여름에, 장년의 시절을 가을에, 노년의 시절을 겨울에 빗대어 봅니다.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계절의 흐름과 유사하기 때문일 거예요. 오늘 만나게 될 인물은 인생에서 겨울의 시기를 살아가는 한 노인입니다. 노인이 사는 곳은 중앙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쿠바의 한 작은 어촌인데요, 지금부터 이 노인을 만나기 위한 항해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노인은 바다로 나갑니다. 그는 어부였고 그래서 바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다는 그에게 삶 그 자체였습니다. 테라스로 나가 바다의 표정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바다가 잠들기 시작하면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언제나 바다로 나갔고, 언제나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은 월척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허탕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인은 계속해서 허탕을 쳤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84일이 되도록 노인의 배는 텅텅 빈 채로 돌아왔습니다. 노인의 곁을 지키며 고기잡이를 배우던 소년도 빈 배로 돌아오는 날이 40일 정도 지났을 때 부모의 권유로 다른 배를 타게 됐습니다. 소년은 비록 다른 배를 탔지만 노인의 신념이나 고기잡이 기술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인이 최고의 어부라고 믿었으며, 노인의 생활을 돌봐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노인이 최고로 큰 물고기를 잡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여러분이 노인이라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할 때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포기와 도전의 갈림길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노인은 새벽 추위에 몸을 떨더라도 곧 따뜻해질 것이며 자신은 곧 바다 위에서 노를 젓고 있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갈등도 하지 않았고 배로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노인은 바보일까요?
84일째 허탕을 친 다음 날은 만선의 첫날이 될 수도, 빈 배로 오는 85일째가 될 수도 있는 날이었습니다. 태풍이 불어올 시기인데도, 노인은 오늘처럼 조용한 날이 고기를 잡는 데 최적이므로 때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날도 역시 혼자서 바다로 나갔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항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항해를 했습니다. 그는 물의 흐름, 새들의 움직임을 통해 바다의 상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별의 위치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도 있었습니다. 돌고래 암컷과 수컷의 한숨 쉬듯 물을 뿜는 소리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예민했으며, 그곳에서 삶을 깨달아 갔습니다.
어느새 노인은 먼 바다 아주 깊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거대한 물고기를 만납니다. 최고급 미끼를 던져 놓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물고기를 낚게 되었습니다. 과연 노인은 월척의 기쁨을 누리며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때였다. 고기가 갑자기 요동을 치는 바람에 노인은 그만 뱃머리 쪽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만일에 노인이 얼른 몸을 일으켜 버티면서 줄을 풀어 주지 않았다면 물속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다. (중략)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줄을 다루다가 문득 노인은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놈의 고기 녀석이 또 어디가 아팠던 게야.” (중략) “이 녀석아, 나는 마지막까지 견딜 수 있단다. 그러니까 너도 끝까지 견뎌야만 한다. 그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
항구를 떠나온 지 3일이나 지났습니다. 그동안 물고기는 살려고 애를 썼고, 노인은 잡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쉽게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는 물고기와의 싸움은 노인을 몹시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이 늙은이야, 침착하고 기운을 내란 말이야” 하면서 스스로를 타이르고 다독였습니다. 심지어 물고기에게조차 말이지요.
1952년 발표된 소설 ‘노인과 바다’는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수작(秀作·빼어난 작품)으로 꼽힙니다.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노인’과 ‘바다’를 통해서 펼쳐지고 있지요. 노인은 매우 의지적인 인간입니다. 사자 같은 힘을 갖고 바다로 나가기를 원하지요. 그는 빈 배로 돌아오는, 허무한 날이 계속된다 해도 또다시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할 겁니다.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나요? 그런 사람이 바다에서 맞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지 말입니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네요.
이승은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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