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에 취임했던 정상명 총장 ‘난국’에 퇴임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4분


23일 퇴임한 정상명(57·사법시험 17회) 검찰총장은 평소 스스로를 ‘특급 소방수’라고 불렀다.

그만큼 정 총장이 신임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던 2005년 11월 24일부터 퇴임한 이날까지 꼬박 2년 동안 검찰에는 위기와 난제가 꼬리를 물었다.

정 총장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구속 여부를 놓고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이에 반발한 김종빈 총장이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어수선한 상황에서 검찰 총수 자리에 올랐다.

또 검경 수사권 조정, 사법개혁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어서 검찰의 입지는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정 총장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취임 일성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 확보’를 외쳤다.

재임 중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 사건’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 등 대형 사건과 고법 부장판사를 구속시킨 ‘법조 비리 사건’ 수사를 총지휘했고, 이 과정에서 법원과 영장 갈등을 겪기도 했다.

올해 7, 8월에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예비 대선 후보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면서 ‘도곡동 땅 일부는 제3자 소유로 보인다’는 수사 결과 발표를 강행해 이 후보 측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청사 별관 4층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그는 재임 2년간의 활동을 담은 동영상을 관람한 뒤 “여러분에게 노고와 어려움만 드렸다”며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 총장은 퇴임사에서 “여러분의 피나는 노력으로 국민적 염원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은 이제 튼튼한 토대 위에 서게 됐다”고 회고했다.


▲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하지만 그가 퇴임한 날까지도 검찰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사들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이 위기에 처하자 정 총장은 ‘특별수사·감찰본부 설치’라는 해법을 내놓았지만 결국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법안이 이날 국회를 통과했다.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검찰 조직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위기 때 왔다가 위기를 앞에 두고 떠나는 그는 결국 ‘원칙’대로 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진실 추구’만이 존경받는 길임을 명심하고 진실의 칼 하나로 승부를 걸어라. 진실의 칼은 깨끗한 손에 쥐어져 있을 때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노력하는 한 희망이 있다. 오직 국민만 보고 노력해 달라. 기죽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고검장급 4명 인사

법무부는 23일 대검찰청 차장에 권재진(54·사법시험 20회) 대구고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는 명동성(54·20회) 광주고검장을 26일자로 임명했다.

서울고검장에는 박영수(55·20회) 대전고검장이, 법무연수원장에는 안영욱(52·19회) 서울중앙지검장이 각각 자리를 옮겼다.

이날 단행된 검찰 고검장급 인사는 임채진(55·19회) 신임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강화하고, 지역 안배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교체할 것인가, 교체한다면 누구를 임명할 것인가였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대선 정국의 주요 변수인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에선 BBK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상황에서 안 지검장을 교체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기류가 있었다. 하지만 안 지검장이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임 신임 총장과 경쟁했던 사이였고, 두 사람이 사법시험 동기여서 임 총장의 지휘권을 확실히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안 지검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후임 서울중앙지검장 인선에는 지역 안배가 고려됐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경북 영천), 임 신임 총장(경남 남해)은 모두 영남 출신이어서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차장 중 적어도 한 자리는 비영남권 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청와대에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도 속에서 ‘특별수사통’에 호남(전남 강진) 출신인 명동성 광주고검장이 무난히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낙점받았다. 대구 출신인 권 고검장은 ‘공안통’에 친화력이 뛰어나 업무 조정 및 총장 보좌역을 해야 하는 대검 차장으로 교통정리됐다는 후문이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권재진 대검찰청 차장

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공안통’. 임채진 검찰총장이 서울북부지청장으로 재직할 때 차장검사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부드러운 성품에 친화력이 뛰어나다. △대구 △서울지검 형사3부장 △울산지검장 △대검 공안부장 △대구지검장 △대구고검장

○안영욱 법무연수원장

대검 공안과장과 공안기획관, 서울지검 1차장을 두루 거친 검찰 내 대표적인 ‘공안통’. 신행정수도 특별조치법 헌법소원에 대한 법무부의 각하의견서를 작성했다. △경남 밀양 △대검 공안기획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서울지검 1차장 △울산지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박영수 서울고검장

대검 중수부장 시절 현대·기아자동차 비자금사건 등을 무난하게 처리했다. 조직폭력배 지도를 완성할 정도로 조폭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내 ‘강력통’이다. △제주 △서울지검 강력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대통령사정비서관 △대검 중수부장 △대전고검장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

1998∼99년 서울지검 특수3부장 시절 기아자동차 비리 사건, 병무비리합동수사 등 굵직굵직한 대형사건을 처리했다. 소탈하고 담백한 성격이라는 평을 듣는다. △전남 강진 △서울지검 특수3부장 △목포지청장 △대검 수사기획관 △서울동부지검장 △광주고검장

  • 좋아요
    1
  • 슬퍼요
    0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1
  • 슬퍼요
    0
  • 화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