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진압하던 소방관,다음날 현장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 입력 2007년 11월 29일 03시 02분


윤재희 소방사
윤재희 소방사
결혼 석달 앞두고…꽃같은 젊음 지다

소방차량 정비 나섰던 최태순 소방교도 교통사고 순직

“저 지갑에 든 여자 친구 사진을 보여 주며 그렇게 자랑했는데….”

28일 오후 경기 이천시 이천소방서 관고119안전센터의 한 소방관은 숨진 동료 윤재희(29) 소방사의 빈 책상 위에 놓인 지갑을 가리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갑에는 내년 2월 윤 소방사와 결혼할 예정이던 김모(25·여) 씨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윤 소방사는 27일 발생한 이천시 마장면 CJ 이천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했다.

○ 화재 하루 뒤 시신으로 발견돼

윤 소방사는 28일 오전 8시경 CJ 이천공장의 A동 생산실 화재 현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불이 난 것은 하루 전인 27일 오후 3시 반. 이천, 여주 등지의 7개 소방서에서 200여 명의 소방관이 투입됐지만 공장이 불에 잘 타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오후 10시 반경 큰 불길이 잡혔지만 윤 소방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소방호스를 들고 화재 현장 제일 안쪽에서 잔불을 끄던 것이 동료들이 본 윤 소방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경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윤 소방사가 화재 현장 안쪽으로 진입하던 중 철제 지붕이 무너져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 “1인 3역 하던 모범 대원인데…”

화마(火魔)에 맞서 싸우던 동료의 죽음이 알려진 이날 관고119안전센터는 하루 종일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윤 소방사가 2005년 1월 소방관으로 임용된 뒤 줄곧 일해 온 곳이어서 동료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한 소방관은 “윤 소방사는 소방차 운전, 화재 진화, 119구급대까지 1인 3역 이상의 일을 했다”면서 “사람이 부족해 한 달에 5일 정도밖에 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안상철 이천소방서장은 “소방관 일에 자부심을 가진 듬직한 젊은이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신혼집을 구했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윤 소방사의 순직 소식을 듣고 충북 진천군에서 올라온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넋을 잃었다. 윤 소방사의 어머니(55)는 소방서 직원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60)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들이 여러 사람에게 부담만 주고 간 것 같다”며 오히려 소방서 동료와 선후배들을 위로했다.

특히 윤 소방사와의 결혼식을 3개월 남겨 뒀던 여자 친구는 할 말을 잃은 채 망연자실해했다.

○ 여주 소방관도 같은 사고로 순직

이번 화재 때문에 숨진 소방관은 윤 소방사만이 아니었다.

여주소방서 여주119안전센터 소속 최태순(38) 소방교는 27일 오후 11시 35분경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이천 나들목 근처에서 5t 트럭에 치여 숨졌다.

최 소방교는 CJ 이천공장 화재 현장에서 복귀하던 소방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고장 났다는 연락을 받고 차량 정비를 위해 출동했다가 순찰차에서 내리는 순간 사고를 당했다. 14년차의 베테랑 소방관인 최 소방교는 네 살짜리 딸을 남기고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경기소방재난본부는 윤 소방사와 최 소방교에게 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하기로 했다.

이천=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CJ측 “유가족 다각적 지원”▼

CJ제일제당은 28일 경기 이천공장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 2명의 유가족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김진수 사장은 이날 “화재 진압을 위해 힘써 준 소방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김 사장을 주축으로 회사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유가족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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