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 이용된 삼성 임원명단 확보

  • 입력 2007년 12월 3일 03시 03분


■ 특본, 삼성증권 사흘째 압수수색

삼성 비자금 및 로비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 울산지검장)는 지난달 30일 삼성증권 본사 압수수색에서 삼성이 운용한 차명계좌에 이용된 임원 2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특본은 삼성증권 사옥 7층 감사팀장 사무실에서 이 명단을 확보했다. 또 2004년까지 삼성증권에 근무하던 박모 과장이 차명계좌를 빌미로 회사 측에 보낸 협박성 e메일 수십 통도 함께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적 자료 확보=특본은 “구체적인 수사 상황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지만 수사팀은 ‘결정적인 자료’를 확보했다는 분위기다. 삼성이 임원들 명의로 차명계좌를 관리해 왔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 자료다.

한 검찰 관계자가 “삼성증권은 ‘삼성의 은행’ 아니냐”고 말한 데서도 수사팀이 이 명단을 확보한 뒤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임을 엿볼 수 있다.

또 수사팀은 이 명단을 통해 삼성 계열사들이 차명계좌 운용에 광범위하게 관련돼 있다는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증권 측은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이던 박 과장이 회사를 협박하며 보낸 자료일 뿐 차명계좌 자료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특본은 지난달 30일 실시한 경기 과천시 삼성SDS e데이터센터 압수수색을 2일 0시경 마무리했다. 동시에 시작한 서울 강남구 수서동 삼성증권 전산센터 압수수색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특본이 2일까지 확보한 전산자료는 4.8TB(테라바이트·1TB는 1024GB) 분량. 이는 최신형 컴퓨터 50대의 하드디스크 저장 용량이다.


촬영 : 전영한 기자

▽임원 조사 전망=특본은 차명계좌 임원 명단에 대한 추가 조사가 마무리되면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조사할 삼성 임직원들을 선별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수사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압수수색 자료 분석 속도에 따라 특별검사 도입 전에라도 이들에 대한 조사를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수남 특본 차장이 1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가로 출국 금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1일 5일째 검찰 조사를 받고 오후 늦게 귀가하면서 “비자금과 관련된 삼성 임원 30여 명의 명단을 검찰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차장은 2일 “이(명단에 거론된) 사람들 명의로 계좌가 개설됐다는 건지 이 사람들이 비자금 관리자였다는 건지 좀 더 검증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검이 반대하는 특검?=삼성 수사에 관한 특검법이 4일 국무회의 의결을 앞둔 가운데 과거 특검이나 특검보를 맡았던 변호사들은 특검 수사에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 특검을 맡았던 김진흥 변호사는 “이번 특검법엔 당선 축하금, 삼성의 불법 경영 승계 등이 수사 대상에 포함돼 수사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의 특검보 김원중 변호사는 “특검은 검찰 수사에 신뢰가 가지 않거나 추가 의혹이 있을 때 해야 한다”면서 “특검이 처음부터 수사를 한다면 그냥 ‘검찰’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 당시의 특검보 이준범 변호사는 “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105일 안에 사건을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간 제한이 없는 검찰보다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 도입 전까지는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김진흥 변호사는 “특검 도입 전까지 검찰은 최선을 다해 진술과 증거물 등을 수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수사 당시 특검보 함승희 변호사는 “특검이 생겼다고 검찰 고유 권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면 그때 자료를 넘기면 된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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