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언론에 보도된 ‘김경준 메모’를 앞세워 연일 장외시위를 하며 검찰을 공격하는 데 맞서 수사팀은 명예를 걸고 진상을 가려내기로 작심한 것이다.
▽검찰, 메모 필체 대조하기로=‘경준’이라는 이름이 적힌 메모에는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풀어 주면 3년으로 형을 낮춰 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은 김 씨는 물론 김 씨의 어머니와 장모 등을 불러 그 메모를 건네받은 시기 등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김 씨의 접견 기록이나 조사 내용을 분석해 그런 제안이 있었다고 오해할 만한 사안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또한 김 씨의 평소 한글 글씨체를 메모의 필체와 비교하고, 김 씨가 면회 과정에서 필기구를 실제로 사용했는지도 확인하기로 했다.
검찰은 김 씨가 계약서와 여권 등을 위조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 메모를 위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누가 형량 감경을 제의했나=검찰은 김 씨가 국내 송환 직후부터 줄곧 자백을 대가로 형량 감경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한국에는 미국처럼 형량을 협상하는 ‘플리 바게닝(Plea bargaining) 제도’가 없다”고 하자 김 씨는 “한국에도 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김 씨의 장인은 6일 본보 기자와 만나 “(지난달 23일 김 씨의 어머니가 입국한 직후) 아내와 함께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면회 갔을 때 사위가 건넨 메모”라며 “그 뒤 미국에 있는 딸(이보라 씨)에게 팩스로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김 씨의 변호인 오재원 변호사에게 이런 메모가 있는데, 검사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왜 옆에서 검찰의 회유를 제지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는데, ‘김 씨가 오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며 “이 일로 오 변호사가 변호사 활동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형사처벌로 이어질까=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김 씨에게 제안한 것이 아니라 김 씨가 누나인 에리카 김 씨와의 통화 내용을 메모로 적었거나, 처음부터 에리카 김 씨가 적었을 수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메모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 중인 에리카 김 씨가 기자에게 팩스로 전달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6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회유 의혹에 대해) 피고인이 앞으로 받을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그는 본보 기자와 만나 “김 씨의 수사 도중 에리카 김 씨와 한 차례 통화한 적이 있다”고 말했으나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검찰은 김 씨가 메모를 작성한 사실이 없거나,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공개했다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그 메모로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진실을 가려야 한다”며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검찰이나 수사팀 검사에 대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허위사실을 메모 형식으로 적어 공개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온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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