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사이코패스

  • 입력 2007년 12월 10일 02시 59분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해 놓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다음 살인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겉은 멀쩡한데 극악한 죄를 저질러 놓고도 죄책감이 없는 유영철 같은 사람을 두고 전문가들은 ‘고장난 마음’의 소유자,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부른다. 미국 연쇄 살인범의 90%가 사이코패스라는 보고가 있다.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의 공동 저자 폴 바비악(산업심리학)은 “사이코패스들은 어두운 뒷골목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번듯한 직업을 가진 화이트칼라 계층에도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번듯한 정장을 한 사이코패스들은 예의바르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 해 상대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곤경에 빠뜨린다. 도덕 체면 염치와 관련한 유전자가 아예 없기 때문에 잘못이 드러나도 부끄러워하는 대신 새로운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려 한다. 이들의 거짓말은 보통 사람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고 법과 규칙, 도덕률은 필요할 때만 지키면 되는 사치품이다.

▷이들은 학력이나 자격증이 없으면 서슴없이 조작하고 나중에 드러날 것에 대비해 거짓 증명서까지 만들어 놓는다. 개중에는 고학력에 번듯한 외모와 언변으로 지성적이고 당당한 매력까지 풍겨 기업 인사담당자들조차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리더십 요소’로 잘못 보고 채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 방면의 전문가들도 ‘양복 입은 독사(毒蛇)’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거짓 학력이라는 증거가 나왔는데도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결백을 주장한 전직 큐레이터도 있다. 화려한 학벌에 기막힌 수익률을 냈다는 ‘IQ 160’(검찰 발표)의 투자 천재가 고등 사기꾼으로 판명되는 세상이다. 사이코패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성(理性)이 울리는 적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정직이나 신뢰 같은 내면적 가치를 높이 사 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검찰보다 사기꾼의 말을 더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사이코패스가 노리는 허점이 많다는 의미도 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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