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엑손발데즈호의 추억

  • 입력 2007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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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24일 0시 4분 유조선 엑손발데즈호의 헤이즐우드 선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해안경비대에 전달됐다. 전날 오후 1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싣고 알래스카 발데즈 항을 출발한 엑손발데즈호는 다가오는 빙산을 피하지 못하고 프린스윌리엄 해협에 좌초했다. 곧이어 기름 탱크가 터졌고, 검은 기름이 상공으로 솟구쳤다.

석유의 체르노빌 사고

유조선에서 유출된 4만1000t의 기름은 해류를 따라 750km를 흘러갔고, 1120km의 해안을 휩쓸었다. 바닷물 위나 해변에 잠시 내린 새들은 검은색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어 갔다. 그렇게 해서 죽은 바닷새가 25만∼50만 마리, 바다표범이 300여 마리였다. 얼마나 오염이 심했는지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면 기름이 30cm가량 깊이로 오목하게 파였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엑손사가 기름 제거 작업 종료를 선언한 것이 1991년, 사고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엑손사는 이 사고와 관련해 청소 작업과 주민 보상 등에 약 35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를 썼다. 기업이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돈벌이만 추구하다간 존폐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은 이 사건의 첫 번째 교훈이다.

기름제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고 지역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바닷새, 바다표범과 대머리독수리가 돌아왔다. 하지만 되살아난 이곳의 모습은 결코 예전 모습은 아니었다. 은어는 돌아왔지만 청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되돌아오지 않거나 되돌아오더라도 원래 모습과는 다르다는 ‘불가역성의 원리’를 확인한 게 이 사건의 두 번째 교훈이다.

이번에 태안 앞바다에서 사고가 난 허베이스피릿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8000t가량이다. 엑손발데즈호의 5분의 1 수준이니 결코 작은 사고가 아니다. 사고 13일째를 맞는 우리는 여전히 기름띠 확산 방지와 기름 제거라는 일차적 목표에 매달려 있다.

기름을 손으로 일일이 닦아 내는 초기 방제는 중요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방제 당국은 외국에서 ‘실패했다’고 결론 내린 방제 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유화제를 대량 살포하고 고온수를 고압으로 분사하는 씻어 내기 작업이 그것이다. 속이야 어떻게 썩어 가든 ‘당장 기름만 안 보이면 된다’는 공무원식 발상이 이번에도 작동한 것일까.

미국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은 엑손발데즈호 사건에 대한 최종보고서에서 “처음의 기름 제거 작업이 이익이 되기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쳤다”고 적시했다. 뜨거운 물을 강한 수압으로 내뿜어 기름을 씻어 내는 방식이 기름 못지않게, 때로는 더 심하게 해양생물을 죽였다는 것이다.

자연 치유의 힘 믿어야

해양 오염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유화제에 의한 2차 오염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엑손발데즈호 기름 유출을 연구해 온 리키 오트 박사는 “유화제는 기름막을 없애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이는 유화제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독성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태안 해변은 말끔해진 듯 보이나 기름은 모래 깊숙이,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생태계는 무질서해 보이나 내적으로 엄연한 질서를 갖추고 있다. 그걸 무시하고 인간의 잣대로 섣불리 복원에 나선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된다. 눈가림 복원에 매달리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된 마음으로 과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엑손발데즈호 사건의 마지막 교훈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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