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염소가 뜨거운 우정을 나눈다는,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기죠.
먹고 먹히는 관계인 늑대와 염소.
이 둘이 사이좋게 소풍을 떠나 점심을 먹는 영화 속 장면을 두고 “늑대가 점심과 점심을 먹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늑대와 염소가 나누는 금지된 우정.
어쩌면 이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별한 만남’에 대한 알레고리(allegory·비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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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된 늑대와 염소처럼… 선입견 버리면 마음이 열려요
[1] 스토리라인
폭풍우 치던 날 밤. 어린 양 ‘메이’와 늑대 ‘가브’가 비바람을 피해 오두막으로 들어옵니다. 어둠 때문에 서로를 알아볼 수 없었던 그들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너무나 잘 통한다고 느낍니다. 메이와 가브는 날이 밝으면 오두막에서 다시 만나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이튿날 재회한 둘은 화들짝 놀랍니다. 알고 보니 가브는 메이의 천적인 늑대였고, 메이는 가브의 먹잇감인 염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둘은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친구가 되기로 맹세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간단치 않았습니다. 이들의 위험한 우정은 들통이 나고 맙니다. 가브는 늑대무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메이는 무리에서 추방될 위기에 놓이지요.
아, 우정이냐 현실이냐. 둘은 마침내 격랑 속에 몸을 던집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둘만의 우정을 이어갈 장소인 ‘전설의 숲’으로 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목숨을 건 여정 끝에 전설의 숲에 당도한 메이와 가브. 그들은 그토록 함께 보고파했던 보름달을 응시하며 말합니다. “우리 이제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지?”(메이) “계속. 계속 함께 있을 수 있걸랑?”(가브)
[2] 핵심 콕콕 찌르기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할수록 우린 더 지혜로워집니다. 하지만 이 명제는 언제나 참일까요? 아닙니다. 때론 더 많은 정보가, 진실을 보기 위한 우리의 눈을 가려 버릴 때도 있습니다.
영화 속 메이와 가브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둘이 시각과 청각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메이는 가브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을 것이고, 가브는 메이의 냄새를 맡자마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달려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둘은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서로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가브는 코감기에 걸려 메이의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습니다. 둘은 상대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채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지요.
참 역설적이죠? 눈으로 보지 않고도, 코로 냄새를 맡지 못하고도, 외려 상대를 더 잘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니 말이지요. 그만큼 정보란 것은 가끔은 불완전하여 우리의 올바른 판단을 흐려 놓기도 합니다. 때론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냄새 맡아지는 것을 믿지 말고, 우리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3] 종횡무진 생각하기
메이와 가브는 종(種)의 벽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눕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무리의 위협과 반대를 무릅쓰고 둘만의 우정을 펼칠 신세계를 찾아 떠나지요. 그런데 메이와 가브의 이런 모습은 혹시 우리 인간사회 속 어떤 만남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요?
먼저 메이와 가브의 만남을 서로 다른 경제적 계급 간 만남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염소인 메이는 노동자를, 늑대인 가브는 자본가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지요. 메이가 가브에게 의심 없이 다가가고 가브는 목숨을 아끼지 않은 채 메이를 보호해 주는 모습. 이들의 우정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상생(相生)의 덕목을 실현시켜나가는 모습에 대한 은유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약자와 강자’라는 분류법을 떠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메이와 가브의 우정은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던 맥락에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남자와 남자의 사랑, 즉 동성애라는 관점이지요.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요? 지금부터 근거를 대보겠습니다.
메이와 가브는 공교롭게도 모두 수컷입니다. 둘은 ‘비밀친구’였습니다. 둘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버리고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엽니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사회의 통념에선 결코 용납되지 못할 만남이었습니다. 둘은 무리의 타박을 무릅쓰고 만남을 지켜가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결국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함께 있을 둘만의 공간(전설의 숲)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렇습니다! 우정이란 이름으로 지속되는 메이와 가브의 관계는 알고 보면 ‘금단(禁斷)의 사랑’이었던 겁니다.
“차라리 우리가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늑대 가브)
“저 산으로 가보는 건 어때? 어차피 우린 갈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잖아?”(염소 메이)
물론 만화의 원작자가 동성애를 상정하고 작품을 썼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논리적인 근거를 조목조목 들면서 동성애의 코드를 읽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발상과 능력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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