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론/이병민]<4>‘공교육 바로 세우기’ 학교에 맡겨라

  • 입력 2007년 12월 25일 02시 59분


조기 유학을 비롯한 교육 엑소더스, 엄청난 사교육비, 교육 양극화, 공교육 붕괴, 대학의 자율성과 3불 정책, 대학의 경쟁력 강화 등 교육과 관련한 주요 현안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대선이었다. 교육을 둘러싼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새 정부는 이것을 풀어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교육 문제를 일시에 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미래를 지향해야 하며 다양성과 자율에서 찾아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고 경제 규모는 세계 13번째 수준이다.

평준화 틀로선 인재 못길러내

외형적으로만 변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의식과 가치관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졌다. 교육은 무균의 실험실이 아니며 교실은 현실의 또 다른 공간이다. 따라서 교육은 현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

획일화된 평준화 틀로서는 다양한 학생을 길러 낼 수 없다. 국가가 일일이 통제하고 재단하는 획일화된 교육 과정으로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어렵다. 통일된 교육 과정을 해결하기 위한 수준별 수업과 같은 대안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교육 내용을 현장에 맞게 바꿔야 하는데 이는 개별 학교의 몫이다. 개별 학교가 주체가 되도록 능력을 키워 줘야 한다. 각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실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교육이나 교육 엑소더스는 학교가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발생한다. 그런 경향은 계층에 관계없이 더욱 심화되고 사교육은 새로운 교육 과정을 통해서 공교육을 대체하려고 나설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교육은 더욱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공교육이 교육의 중심으로 환원되는 길은 개별 학교에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자율은 중등교육이나 대학교육을 살리는 또 다른 큰 축이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해 있는지 직시하고 자신이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책임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계몽된, 성숙한 성인의 모습이다.

지난 60년간 공교육은 교육 주체를 수동적 존재로 만들었다. 교육 주체인 학교는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사는 정해진 교육 과정 내에서 주어진 교재로 주어진 내용을 가르치는 수동적 지식 전달자로 전락해 버렸다. 세분된 상향식 교육 개혁만이 성공할 수 있으며 교육의 주체인 학교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이 처한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중등교육이 자율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지 못하니 대학에서 학생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잣대 또한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성적 위주의 평가나 제한된 시험을 통해 줄을 세우려는 시도는 중등교육이 다양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길러진 학생이 별로 개성이 없으니 다양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일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다양성 보장할 기반 구축 절실

개별 대학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다양한 길을 열어야 한다. 초기 미국 헌법은 식민지 13개 주가 서로 다른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획일화되고 타성에 빠진 사람은 결국 내 운명을 결정해 줄 타자를 향해 손을 벌리기만 할 뿐이다.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열정과 흥미를 갖고 도전하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새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제 정부가 교육에 대해서 해야 할 역할은 교육 주체가 다양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외된 약자를 보호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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