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매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는다. 해가 바뀌기 10초 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0”을 외치는 순간 “뎅∼” 하는 웅장한 종소리가 서울 밤하늘을 가른다. 보신각종이 33번 울리는 동안 사람들은 환호하며 서로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다. 바로 이 순간 단 한 사람만은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고 있어야 한다. 바로 보신각 종지기다.》
○ 60년 보신각 종지기
일제강점기 보신각종은 울리지 못했다.
보신각종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8월 15일 낮 12시 이승만,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다시 울렸다. 제야의 종 타종이 시작된 것은 1953년 12월 31일 밤 12시부터다.
광복 이후 작년 12월 중순까지 60년 넘게 보신각종을 지킨 이는 고(故) 조진호 보신각 관리소장이었다. 조 소장의 집안은 조 소장까지 5대에 걸쳐 보신각종을 돌봤다. 조 소장 역시 1946년 광복 후 첫 타종식 때부터 보신각종을 ‘종님’이라고 부르며 80 평생 성심껏 종을 섬겼다.
지난해 12월 건강이 악화된 조 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지난해 ‘제야의 종’ 행사는 자칫 큰 차질을 빚을 뻔했다. 조 소장을 대신해 행사를 맡은 사람은 광복 후 제2대 보신각 종지기가 된 신철민(34) 씨다.
○ 0.1초의 미학
제야의 종 타종은 1초, 아니 0.1초만 제대로 맞추지 못해도 맥이 빠진다. 종을 치는 것은 타종대를 잡은 네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종지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종지기는 타종대 위쪽에 붙은 작은 손잡이를 이용해 네 사람의 힘을 조절하면서 종소리가 제대로 나도록 한다. 33회라는 횟수와 시간 간격을 맞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신 씨는 지난해 행사 직전 “제발 무사히 행사를 치르게 해 달라고 돌아가신 소장님께 빌고 또 빌었다”고 했다. 온 힘을 다해 33번의 타종을 마친 신 씨는 진이 빠져 30분 넘게 종 앞에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신 씨가 조 소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작년 11월.
3·1절, 광복절, 제야 등 1년에 3번만 울리던 보신각종은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상설 타종으로 바뀌었으며 신 씨는 당시 상설 타종 연출 담당이었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조 소장은 종에 대한 애정이 깊은 신 씨를 무척 아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종 관리법이나 타종대에 붕대 감는 법 등을 전수했다. 그리고는 “내 뒤를 이어 꼭 종을 섬겨 달라”고 부탁했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조 소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매일 병원으로 문병을 다니던 신 씨는 장례를 치른 다음에야 종지기의 업(業)을 잇기로 마음을 정했다.
○ 평생 종님을 섬기고 싶어
신 씨는 현재 서울시 문화재과 소속 공무원이다. 올해 3월 종지기 1명 모집에 26명이 지원했으나 서울시는 종을 비롯해 한국 전통 문화에 깊은 애정과 지식을 갖춘 신 씨를 뽑았다. 서울시는 조 소장의 아들에게 먼저 “가업(家業)을 이을 뜻이 있느냐”고 타진했지만 아들은 간곡히 서울시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신 씨를 대신 추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통 문화행사의 재현과 관련된 일을 해 온 신 씨는 “내게 보신각종은 돌봐야 할 문화재가 아니라 큰집같이 푸근한 존경스러운 대상”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소장님처럼 평생 ‘종님’을 섬기고 싶다”고 말했다.
신 씨는 또 “예전과 달리 요즘은 상설 타종 행사가 있어 누구나 보신각종을 쳐볼 수 있다”며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이름과 사연을 남긴 뒤 타종자로 선정되면 평상 시 매일 정오에 12번씩 보신각종을 칠 수 있다. 상설 타종은 내년 1월 2일부터 재개돼 12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보신각종
보물 제2호로 조선 세조 14년(1468년) 원각사종으로 주조됐다.
종에 금이 가자 1979년부터 제야 행사 때만 타종되다가 1985년부터는 제야 행사용으로도 사용되지 않게 됐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현재의 보신각종은 1984년 보신각종주조위원회가 만들어 서울시에 기증한것이다. 1985년 광복절에 처음 타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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