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거부권 명분 없었다’ 강조
한나라 “국익보다 당리 선택” 靑비난
신당 “당연한 일”… 일각선 역풍 우려
새 정부 출범을 목전에 두고 특검 정국이 도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헌 논란에 휘말린 ‘BBK 특검법’을 원안대로 수용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발의한 대통합민주신당을 설득해 정치적 절충점을 찾지 않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나서 특검법 재의를 요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26일 특검법을 의결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재의를 요구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돼 온 법안이며 당사자인 이 당선자가 수용 의사를 밝힌 상태”라며 “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가능성도 지켜보았으나 이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도 여러 의견이 있고 다른 특검의 전례가 있어 재의를 요구할 근거가 충분치 않다”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내부에서 특검법이 내년 총선에서 역풍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공식 당론으로 정리되지 않아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상황을 정리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다고 한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국회에서 정당 간 협상 등을 통해 청와대가 움직일 여지를 만들어 줬어야 하는데 청와대의 결단만 지켜보는 상황이 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푸념했다.
게다가 대선 직전 이 당선자의 ‘BBK 육성 동영상’이 공개되자 BBK 사건에 대한 특검을 통한 재수사를 위해 노 대통령이 ‘검찰 재수사 검토’까지 지시했다는 점에서도 특검법을 거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검법 의결로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 간 첫 회동은 묘한 갈등 상황에서 열리게 됐다.
한편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국익보다는 당리(黨利)를 선택했다”며 노 대통령에게 비판의 날을 세운 반면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은 “당연한 일”이라며 반겼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끝끝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특검을 수용했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며 “특검 결과야 검찰 수사와 다를 것 없음은 명약관화하다. 오히려 신당에 계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앞으로 임명될 특별검사팀이 BBK 사건의 진실을 가려 국민의 마음속에 남은 의심을 말끔히 해소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논평에서 “의혹은 특검의 수사로 가부간에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했고 민주노동당 황선 부대변인도 “모른 척 넘어가기엔 너무 큰 의혹인 만큼 특검이 성과를 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측은 “이 당선자나 새 정부 처지에서나 국가를 위해서도 특검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예상했던 결정 협조할 건 협조”▼
■ 이명박 당선자측 반응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정부가 ‘BBK 특검법’을 원안대로 의결한 데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당선자 측 인사들은 “당선자가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청와대의 결정은 예상했던 바”라며 “절차에 따라 특검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수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 등 협조할 것은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BBK 특검법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가사법기관인 검찰에서 철저하게 수사한 뒤 ‘무혐의’라고 발표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대통합민주신당 등이 내년 총선을 겨냥해 정략적 목적을 갖고 특검을 밀어붙였다는 판단에서다.
이 당선자는 20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국회에서) 특검이 통과됐는데 헌법에 위배되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특검 수사결과 다시 한번 무혐의로 확실히 나타나면 이를 문제 삼았던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당선자의 한 측근은 “이 당선자는 근거 없는 음해 비방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인식을 확고히 갖고 있다”며 “대선 과정에서 BBK와 관련된 네거티브를 주도한 대통합민주신당 인사들에 대해서는 특검이 종료된 뒤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기어이 “피의자 주장만으로 檢 몰아세워”
차라리 “결과 재확인되면 명예회복 도움”▼
■ 특검 수사대상 된 검찰
이날 국무회의가 당초 예정 시간보다 늦게 열리자 한때 검찰 주변에선 “극적인 반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으나 원안대로 결론이 나자 검찰 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만 판단해 검찰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검찰, “참담한 심정”=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검찰이 최선을 다해 수사 결과를 내놨고 새 대통령까지 선출됐으면 정치권에서 매듭을 지어 주는 것이 옳았다”며 “내년 초에 ‘쌍끌이 특검’이 진행되니까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중견 검사는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검사가 수사 대상이 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2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 “이런 걸 왜 법원에다 맡기는지 모르겠다. 정치권 싸움에 법원까지 끌어들이는 것 같다”며 “대통령 당선자를 수사할 자리를 누가 선뜻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특검 수사가 오히려 검찰에는 ‘약’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재경지검의 한 중간 간부는 “그동안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특검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가 재차 확인되면 검찰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검법 헌법소원 제기=서울지방변호사회 등 6개 지방변호사회는 최근 BBK 특검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달했다. 심판 기관인 대법원장이 수사 주체인 특검을 추천하도록 한 점과 영장주의에 배치되는 임의동행명령제 등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대전지방변호사회는 “검찰의 회유 협박이 있었다는 주장에 근거한 특검법은 김경준 씨 본인이 허위임을 인정한 이상 법 제정 목적을 상실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편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장석화(62) 변호사는 특검법에 대해 헌법소원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헌재 관계자는 “정치적 혼란 등을 줄이기 위해 신속한 심리를 고려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매머드급 수사 규모=이번 특검법은 수사 기간을 대폭 줄인 반면 수사 인력을 늘린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 소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내년 2월 25일 취임하기 전에 특검 수사를 매듭짓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수사 준비 기간은 1주일, 수사 기간은 최장 40일이다. ‘삼성 특검법’에 비해 특검 임명 기간은 5일, 수사 준비 기간은 13일, 최장 수사 기간은 65일이 각각 줄어든 것. 반면 수사팀 인력은 특검보 5명, 파견검사 10명, 특별수사관 40명 이내로 정해졌다. 특검보와 파견검사가 각각 3명인 삼성 특검법보다 배 이상 늘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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