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야, 이제 검은 주름살 거두렴”

  • 입력 2007년 12월 31일 02시 53분


태안 파도초등교생 42명의 새해 소망

“온가족 생계걱정… 아빠는 걱정말라 하시지만 올해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잊고 지나가셨어요”

“또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른대요. 엄마 아빠랑 굴도 따고 게도 잡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새해에는 검은 바다가 다시 파란 바다로 깨끗하게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파도초등학교 3학년 최민용(9) 군의 새해 소망은 예전과 같은 깨끗한 바다와 백사장을 다시 보는 것이다. 흰 눈이 펑펑 내린 30일에는 신이 나서 친구들과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곳곳에 남은 검은 기름때를 보곤 우울해져 힘없이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최 군의 아버지 최장렬(37) 씨는 2005년 봄 경기 수원시에서 고향인 파도리로 이사했다. 회사원 생활을 접고 수협에서 3000만 원을 빌려 파도리 해수욕장 한쪽에 횟집을 차린 것.

청정 해역 해변인 데다 횟감이 싱싱하다는 소문이 돌아 성수기에는 100석이나 되는 자리가 가득 찼다. 최 군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던 행복은 7일 원유 유출 사고 이후 순식간에 사라졌다.

손님 대신 근심스러운 표정의 동네 어른들만 찾아왔다. 마을 어른들은 종종 술을 마시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다. 최 군은 “매년 선물을 잊지 않았던 엄마, 아빠가 올해는 크리스마스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다”며 섭섭해했다.

최 군 학교 친구들도 대부분 어두운 집안 분위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

“가족회의를 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아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등 수를 줄이고 머리 감을 때 물통에 물을 담아서 쓰자고 했다. 아빠는 ‘너까지 신경 쓰지 마라’고 하셨지만 내년에는 나도 중학교에 가고 언니도 고3이라 돈이 많이 들 텐데….” 이 학교 6학년 최주희(12) 양은 최근 쓴 일기에서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전했다.

바닷가로 나가 백사장에서 친구들과 뛰놀며 즐겁게 지내던 겨울방학도 사라졌다. 파도초교를 비롯해 태안지역 초등학생들은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간다. 방제작업에 바쁜 부모들을 위해 학교 측이 방학 동안에도 학생들을 학교에 나오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폐교 위기… “기름 빨리 걷혀 전학 안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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