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찰 관심사는 “치안? 아니죠… 인사? 맞습니다”

  • 입력 2008년 1월 7일 02시 52분


이택순 경찰청장의 임기 만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치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낮 도심에서 조직폭력배의 칼부림과 은행 강도 등 강력 사건이 이어지지만 사건 발생 며칠이 지나도록 경찰은 뾰족한 단서조차 찾지 못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경찰 간부들은 차기 총수가 누가 되느냐는 ‘잿밥’에만 눈이 멀어 본연의 임무인 민생 치안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수표 도난, 칼부림… 손놓은 수사

경기 안양시에서 여자 초등학생 2명이 행방불명된 지 8일로 보름째를 맞지만 경찰은 범인은커녕 두 어린이의 행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헬기 수색을 포함해 연인원 5000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수사했지만 단순 실종인지 납치인지 가닥조차 못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제보자에게 2000만 원을 주겠다는 내용의 전단지 10만 장을 전국에 배포하고 시민들의 제보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5일 오전 8시경에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원당농협에서 2인조 강도가 관리업체 직원을 흉기로 찌르고 현금인출기에서 4800여만 원이 든 박스 6개를 통째로 가져갔다.

지난달 14일에는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신한은행 지점에서 대낮에 40대 남성이 1억여 원의 수표 281장을 훔쳐 달아났다. 범인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인 5일까지 훔친 수표 중 6400만 원가량을 서울 시내 골동품 가게, 금은방과 식당에서 사용했다.

하지만 경찰은 20여 일이 넘도록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의 흐릿한 인상 외에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부산 동래구 안락동 앞길과 부산진구 서면 모 제과점 앞 도로에서 대낮에 폭력배끼리 흉기를 갖고 싸움을 벌여 모두 2명이 숨졌다.

3일 오전 4시경에도 부산 연제구 한 모텔 복도에서 자칭 칠성파 추종 폭력배인 이모(25) 씨가 또 다른 폭력배인 유모(25) 씨 일행 2명과 싸움을 하다 흉기로 유 씨를 찌르고 달아났다.

○ 청장만이 있을 뿐 치안은 없다

강력범죄가 잇따르는데도 경찰 간부들은 위기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이 청장의 임기 종료와 새 정부 출범이 다가오면서 이들의 관심은 온통 차기 총장 등 경찰 수뇌부 인사에 집중됐다.

서울 시내 한 총경은 기자가 강력사건 수사 상황에 대해 묻자 “그런 사건이 뭐가 중요하느냐”며 “다음 청장은 누가 될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서울 모 경찰서의 한 과장은 “총경 이상 간부들은 정권 교체로 인사 변수가 많아지면서 차기 총수가 누가 될지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경정 이하는 이달 승진시험을 앞두고 출근하면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서 살인과 강도 등 강력범죄의 범인을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서울 강남지역 모 경찰서의 지능팀장은 “원래 연초에는 기획수사 거리를 알아보기 위해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데 올해는 고위간부의 인사 때문인지 그런 분위기가 전혀 조성이 안 된다”며 “위에서도 범인 검거 등 실적을 다그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이 청장의 보신도 치안 실종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청 한 간부는 “사건이 잇따르면 청장이 직접 나서 사건을 챙기고 잘못한 직원을 문책하기도 해야 하는데 요즘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며 “경찰청장이 그러니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지방 경찰청장도 강력사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간부는 “한화 사건을 처음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오 경위를 수사하기 위해 특수수사과를 동원한 것과는 너무 대조가 된다”며 “경찰 간부의 한 명으로서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고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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