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블레이드 러너

  • 입력 2008년 1월 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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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걸작. 이 말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1979년 ‘에일리언’의 성공으로 크게 고무된 리들리 스콧 감독.

그는 3년 뒤인 1982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담은 야심작 ‘블레이드 러너’를 내놨지만 관객의 차가운 외면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2주 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가 개봉돼 세계적인 화제를 독점한 탓도 있었지만, 흥행 실패의 더 근원적인 원인은 영화가 보여주는 암울한 미래관(未來觀)에 있었습니다. 한 점 희망도 없는 잿빛 미래를 예견하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1] 스토리라인

2016년. 거대 기업 ‘타이렐’사는 인간과 똑같은 복제인간(리플리컨트·replicant)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복제인간들은 우주개척지에서의 노동이나 우주 탐사처럼 인간이 하기엔 위험한 일들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유일한 한계가 있었으니, ‘제작’된 후 4년밖에는 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2019년. 문제가 터집니다. 우주식민지에서 노예로 일하던 복제인간들이 탈출해 지구로 잠입한 것이죠. 전투용 복제인간인 ‘베티’(룻거 하우어)와 ‘리온’, 암살 훈련을 받은 여전사 복제인간 ‘조라’, 그리고 위안용 복제인간 ‘프리스’(다릴 한나)가 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만든 ‘타이렐’ 회장을 만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연장해달라는 애원을 하려 했던 것이죠.

이에 경찰은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호출합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들 속에 몸을 숨긴 복제인간을 판별해 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특수경찰이죠. 데커드는 복제인간들을 하나 둘 제거하면서 추격의 끈을 조이고, 사랑하는 연인 프리스를 데커드에게 잃은 베티는 복수심에 불탑니다.

아,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왔습니다. 데커드와 베티가 맞서게 된 것이죠. 데커드는 강인하게 훈련된 베티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건물 난간에 매달려 죽음을 기다리던 데커드.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데커드가 건물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그의 손목을 잡아 올리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베티였습니다. 베티는 “이제 죽을 시간이군(Time to die)”이란 말을 남긴 채 고개를 숙입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이런 생각을 해봅시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오랑우탄을 키웠습니다. A는 무지하게 냉혈한입니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고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즐기고 비웃습니다. 반면 B는 오랑우탄인데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다른 오랑우탄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남들의 고통을 자기 것인 양 아파합니다. 자, 이때 A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입니다. B는 ‘너무나 인간적인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A를 B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겁니다. 영화엔 참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인간들은 ‘비인간적’인 반면, 인간이 아닌 복제인간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니까요. 영화 속 인간들은 어떤 죄의식도 없이 복제인간을 만들고, 그들을 이용하며, 또 그들을 용도 폐기해 버립니다. 반면 죽음을 눈앞에 둔 복제인간들은 인간보다 더 큰 사랑과 슬픔과 고통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고 관용과 희생의 정신을 체현하죠. 영화는 묻습니다.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 ‘비인간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비인간’ 중 더 가치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복제인간 베티가 데커드의 목숨을 살린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하는 순간은 의미심장합니다.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때? 그게 바로 노예의 기분이야. 난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도 참가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보았어. 그 모든 순간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아! 두려움에 맞서 싸우던 경험,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를 가슴 북받쳐 바라보던 기억…. 복제인간이 가진 이런 경험과 기억이야말로 어떤 인간이 가진 그것보다 더 ‘인간적’인 경험과 기억이 아닐는지요.

[3] 이건 몰랐지?

이 영화는 이미지 상징을 통해 미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묵시론적 시각을 드러냅니다.

먼저 복제인간을 만드는 거대 회사인 타이렐사의 건물을 살펴볼까요? 수백 층 높이의 이 건물은 햇빛을 독점하면서 황금색으로 빛납니다. 게다가 타이렐사의 건물은 공교롭게도 피라미드 모양입니다. 피라미드. 우리가 보통 ‘먹이사슬’ 혹은 사회의 ‘지배구조’를 설명할 때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형이지요. 거대 기업이 사회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독점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견입니다.

한편 우뚝 솟은 건물 밑에는 소시민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거대 기업의 빌딩에 햇빛을 ‘도둑맞은’ 시민들은 저주스러운 음지식물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영화 속 장면들엔 ‘하늘과 땅’ ‘햇빛과 어둠’ ‘거대 자본과 소시민’이라는 대조가 절묘하게 녹아 있었던 것이지요.

[4] 명장면&명대사

복제인간 베티는 자신을 만든 타이렐 회장을 찾아갑니다. “더 살고 싶어요, 아버지!” 하고 절규하는 베티. 외면당한 베티는 타이렐의 얼굴에 키스를 합니다. 그리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타이렐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입니다.

이 장면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리스 신화가 포개어져 있습니다. 바로 오이디푸스 이야기이지요. 자신의 태생을 알지 못했던 오이디푸스. 그는 결국 자신의 생부를 죽이고 왕좌에 오른 뒤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자식 넷을 낳는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뒤늦게 사실을 안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스스로 찔러 장님이 되어 버립니다.

창조주를 살해하는 베티의 모습. 이는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의 비극에 대한 절묘한 인용이지요.

[5] 알쏭달쏭 퀴즈

제목은 그 영화가 가진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도 마찬가지죠. 직역하면 ‘칼날 위를 달리는 사람’이란 의미일 텐데요. 이 단어는 복제인간들을 추적·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특수경찰을 일컫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보통명사이기도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란 단어엔 어떤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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