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이란 말은 문학이나 예술에서 최상의 수준에이른 것을 가리킨다.
이는 높은 수준의 그리스 문명이 서양 문명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적 업적을 찬양하기에 바쁘다.
민주주의, 자유, 법치주의 같이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치들은 물론이고 미술, 문학, 신화 등 모든 것을 그리스에서 끌어온다.》
그리스를 문명의 요람으로 여기는 태도를 지닌 서양 사람들이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리엔트 문명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 문명에 대한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이 부차적이며 해상무역 등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부터 20세기 서양고전학계를 풍미한 ‘아리안 모델’이다. 이들은 그리스 문명이 매우 독창적이며 인간 중심적이라고 강조한다. 오리엔트의 과학 기술 문명이 실용적인 단계에 그친 반면, 그리스인들은 추상적인 원리를 추구했고 그리하여 인류의 과학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것. 미술에서도 사실주의적 태도가 나타났고 문학이나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제도도 그리스에서 고안해냈다. 이런 점으로 미뤄 그리스 문명은 독창적이며,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오리엔트 문명이 종교에 매몰되어 있는 반면 그리스 문명은 신마저도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로 인간 중심적인 문명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그것이 다른 문명과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과 다른 주장도 있다.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요람이자 상징이었으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나 여신은 고대 도시 아테네의 수호 여신이었다. 아테네는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감이 팽배했고, 결국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아테네 제국주의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자신감에 찬 아테네인들은 수호 여신인 아테나 여신을 기리기 위해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파르테논 신전을 세웠다. 그런데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 여신이 이집트의 사이스(Sais)라는 도시의 수호신인 네이트(Neith)라는 여신으로부터 비롯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미국 코넬대의 저명한 백인 교수인 마틴 버넬은 1987년 발간된 ‘블랙 아테나’라는 책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서양 고대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우아하고 지적인 고전미를 풍기는 아테나 여신의 대리석 조각상에 익숙한 우리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블랙 아테나’라는 책 제목이 주는 느낌은 ‘검은 피부의 아테나 여신’ 정도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동안 서양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설은 주로 흑인민권운동가들에 의해 주창되어 왔기 때문에 진지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마틴 버넬과 같은 백인 교수가 이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존 학계는 19세기 이래 고고학적 발굴과 문자 해독을 통해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한 오리엔트 문명의 ‘선진성’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기원전 800년 폴리스 시대의 개막으로 ‘전제적인 오리엔트’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유 시민의 고전 문명을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창의적인 업적이 서양 문명의 뿌리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자신(그리스)의 문명적 뿌리가 동방에 있다고 썼다. 특히 이집트 사람들이 그리스를 식민화함으로써 그리스에 국가가 세워졌고, 페니키아 사람들이 문자를 전해줌으로써 문화가 성립했다고 썼다. 헤로도토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리스 작가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전했다.
버넬은 이집트인과 일부 리비아인이 흑인이라고 한 헤로도토스의 주장에 착안하여 책 제목을 ‘블랙 아테나’로 지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기원은 2100∼1100년 중·전반기에 그리스가 이집트인(아프리카인)과 페니키아인(아시아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리스 문화는 이후 동부 지중해 지역의 문화가 섞여 탄생한 일종의 혼합문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인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이 지배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날조된 것인가?
<심화 학습>
본문에 제시된 서양 문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을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과 비교한 뒤 친구들과 토론해 봅시다.
▼버넬의 주장/그에 대한 반론▼
■ 버넬의 주장
마틴 버넬의 주장은 1800년대 이전 서양사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고대 모델’의 부활이라고 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버넬의 모델은 ‘수정 고대모델’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양 사학계를 지배해 온 모델은 ‘아리안 모델’이다. 이 모델은 유럽이 제국주의적인 확장을 최대화하던 때에 등장했다. 당시 유럽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주의가 필요했다. 유럽의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인종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인데, 그 뛰어난 유럽인의 문화적 조상인 그리스가 이집트 또는 페니키아에 의해 문명의 꽃을 피웠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인종주의가 과학이라는 포장으로 유럽의 역사를 지배한 것이다. 그러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료 비평이라는 근대적 기법을 통해 옛 기록을 신빙성이 없다고 규정하거나 신화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대신 입맛에 맞는 기록을 선택해 역사를 다시 만들었던 것이다.
■ 버넬의 주장에 대한 비판
이 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버넬의 주장이 고고학적 증거보다 신화나 언어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므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버넬은 1991년에 출간한 ‘블랙 아테나’ 2권(현재 국내 출판을 위해 번역 중)에서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했으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버넬은 “내 책의 정치적 목적은 유럽의 문화적 오만을 줄이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많은 유럽 학자가 인종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은 정당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서양 문명의 창건자들이 그리스인들과 그리스 문명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렸다는 것도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고대 지중해 세계 청동기 시대에 이집트와 서부 셈족(페니키아)이 그리스를 식민화했다는 이론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다.
버넬의 이론은 미국 대학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학사회의 이단사상’으로 지칭된다. 역사 해석은 늘 대립하기 마련이니 어느 모델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버넬의 연구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곧 출간될 ‘블랙 아테나 3권 : 언어학적 증거’와 ‘블랙 아테나 4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풀기’가 독자의 지지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 그리스 신화의 일부는 역사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역사적 사실로 믿었던 독일의 상인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 작업을 통해 미케네 문명이 세상이 알려졌다. 또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통해 크레타 문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서양 역사학자들은 왜 그 밖의 신화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 신화의 많은 부분이 미케네 문명 시기에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의 조상인 다나오스나 오이디푸스의 조상인 카드모스 같은 동방사람들이 와서 식민통치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버넬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집트 혈통의 왕가 후손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서양 문명의 모태로 삼고 있는 서양인에게 이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오늘날 고대 그리스 역사에 관한 기본 틀은 19세기 초에 형성되었는데, 이때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하고 그 침략을 옹호하는 인종주의가 팽배하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서양인들이 얕보는 이집트인이나 페니키아인(유대인과 같은 셈족에 속한다)이 그 옛날에 고대 그리스 문명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를 더는 정당한 역사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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