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난 줄 알았어요”

  • 입력 2008년 1월 7일 21시 06분


연쇄폭발-시커먼 연기에 인근 주민 긴급대피

"완전히 시커멓습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장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던 소방관은 고개를 저었다. 현장에서 나온 유독가스와 시커먼 연기는 300m 떨어진 지점까지 뒤덮어 전쟁터의 폭격현장을 방불케 했다.

7일 오전 10시 40분경부터 시작한 불길은 오후 3시가 되면서 조금씩 잡혔지만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

지하 1층을 꽉 채운 유독가스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소방관과 취재진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창고 주변에는 폭발 당시 충격을 보여주듯 샌드위치 패널 수십 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아수라장을 이뤘다.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직원의 가족은 놀란 얼굴로 현장에 도착했다. 여성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실종된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며느리 뱃속에는 3개월 된 아기가 있습니다. 지난 해 10월 결혼한 새 신랑인데…"

중화상을 입고 서울 구로구 고척동 구로성심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천우환(34) 씨의 큰아버지 천종수(62)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카락이 노랗게 될 정도로 바삭 탔고 엉덩이부터 발까지 살점이 떨어져 나가 빨갛게 된 아주머니 한 명이 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발생한 불꽃을 보고 제일 처음 119에 신고했던 이명혁(45) 씨는 "불이 전깃줄을 타고 번진 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12대의 차량에 옮겨 붙기까지 1,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며 이같이 전했다.

주민 600여 명은 마을방송을 듣고 호법면사무소로 긴급 대피했다.

냉동창고와 가까운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장성원(58) 씨는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다. 식당 문 유리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진화 및 구조작업에는 소방차 103대와 소방관 440여 명, 경찰 2개 중대와 교통기동대 등이 동원됐다.

이들은 오후 2시 반 이후 건물 입구에 있던 시신 8구를 차례로 수습했다. 하지만 오후 5시가 넘으면서 어둠이 깔리고 건물 내부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계속돼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현재까지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집계된 인원은 57명이지만 용역 작업을 하는 인부와 납품 직원 수십 명이 여러 개의 문으로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천=정혜진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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