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지하에 갇혀 휴대전화로 “살려달라”
연기 안빠져 4시간 지나서야 겨우 수색시작
■ 근로자 40명 사망 참사 현장
‘펑 펑 펑.’ 폭발음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시커먼 연기가 현장에서 500m 떨어진 곳까지 덮었다. 유독가스는 10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숨쉬기조차 힘들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조대원들은 손바닥으로 잿더미를 더듬으며 실종자를 찾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회사 관계자와 가족은 발만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경기 이천시 냉동 창고 화재현장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잇따른 폭발음=소방방재본부와 목격자에 따르면 불은 7일 오전 10시 45분경 폭발음과 함께 발생했다.
창고 인근 공업소에서 일을 하던 문광웅(58) 씨는 “폭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가는데 갑자기 눈앞에 검은 불기둥이 치솟았다”며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최초 신고자인 김안형(52) 씨는 “길 건너편에서 도시가스 작업을 하는데 창고에서 불빛이 번쩍하더니 연기가 치솟았다”며 “정확하게 10시 47분에 119에 신고하고 5분 뒤 다시 전화해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재촉했다”고 말했다.
첫 폭발과 동시에 창고 입구에서 남녀 2명이 달려 나왔다. 겁에 질린 표정이었고 온몸이 검게 그슬려 있었다. 머리카락은 불에 그슬렸고 손목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 너덜거렸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이영선(43·여) 씨는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음이 들리더니 온몸에 화상을 입은 아주머니 1명이 ‘살려 달라’며 식당으로 뛰어 들어와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고 전했다.
곧이어 인근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불길이 전선을 타고 주차장으로 번지면서 창고 20m 앞에 있던 차량 12대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구조작업 차질=폭발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30분 간격으로 폭발이 5, 6차례 계속됐다”고 말했다.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이 현장에 접근하려 했으나 연쇄폭발로 발길을 옮기기 힘들었다.
밀폐된 지하창고에서 유독성 연기가 뿜어져 나와 생존자 구조는 화재발생 4시간 만인 오후 3시경부터 가능했다.
구조작업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창고 입구에서 첫 사망자가 발견됐다. 오후 3시 25분까지 모두 6구의 시신이 차례로 실려 나왔다.
오후 4시경 창고 안쪽에서 다시 불이 붙어 구조작업이 중단됐다. 소방당국은 창고 내부의 붕괴 위험이 커지자 대원을 모두 철수시키고 수색작업을 1시간 동안 중단했다.
의용소방대원 송춘일(52) 씨는 “2만여 m²의 지하 1층 내부가 우레탄 연소로 발생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가득 차 있어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다”며 “내부에 진입하기조차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신원파악도 곤란=폭발 직후 출구를 찾지 못한 인부 가운데 일부는 휴대전화로 동료에게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을 찾은 김성원(45) 씨는 “아직도 친구의 전화에 통화신호가 간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수색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오후 10시 25분경 지하 1층에서 시신 4구를 추가로 발견했다. 오후 11시 18분경에는 40번째 시신이 나왔다. 1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유독가스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들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최초 폭발 때보다 사망 후에 건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과 불에 시신이 많이 훼손됐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희생자는 훼손이 너무 심해 성별 정도만 구분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훼손이 심한 희생자의 신원은 치아 의료기록 대조나 유전자(DNA) 감식을 통해 파악할 수 있어 인적사항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천=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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