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번에도 화마와 싸우고 60시간 쉼없이 일하더니…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이천화재 출동 소방관 뇌출혈로 안타까운 의식불명

그는 현장에 가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출동하는 중인데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주무세요.”

아내와 막내아들을 중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 늘 가족을 그리워하던 그는 집에서 혼자 밤을 보낼 노모를 걱정했다.

어머니는 “잘 다녀오라”고 얘기했다. 정년을 2년 남긴 아들 이수호(55·사진) 소방경이 쓰러지기 전 노모와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이 소방경은 경기 안성소방서 진압대장이다. 9일 오전 8시 20분경 근무 교대를 50분 남기고 쓰러졌다.

심한 두통과 안면마비를 호소해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으로 실려 간 뒤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6일 오전 9시부터 꼬박 24시간 동안 일했다. 7일 오전 경기 평택시의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지만 오후 2시경 비상연락이 왔다. 이천시 냉동창고에서 화재가 났다는 얘기였다.

소방서에 다시 나온 그는 현장 상황이 어려워지자 오후 7시 40분 대원 30여 명을 이끌고 이천으로 출동했다.

매캐한 연기와 유독가스 속에서 정신없이 불을 끄고 시신을 수습했다. 마지막 40번째 희생자를 발견하고 나서 밤 12시에 늦은 저녁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소방서로 돌아온 시간은 8일 오전 2시경. 장비를 정리하고 출동 대기실에서 3시간가량 눈을 붙였다가 오전 9시부터 다시 24시간 근무에 들어갔다. 그렇게 60시간이 넘게 계속 일을 했다.

안성소방서 이종각 소방행정팀장은 “평소에 어디 아프다고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며 “진압대장이지만 다급할 때에는 주저하지 않고 대원들과 함께 현장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로 소방관 생활 29년째다. 큰아들과 딸을 결혼시키고 2년 전 아내가 중국에서 공부하려는 막내아들과 함께 출국한 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24시간 교대 근무에 늘 몸이 피곤했지만 출동할 때마다 노모에게 전화해 “걱정 말라”던 효자였다.

아들이 쓰러진 뒤 식음을 전폐하던 어머니 이모(79) 씨는 11일 오후 병실을 찾은 동료 소방관들을 붙잡고 “우리 아들 괜찮지, 괜찮은 거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소방경이 “우리 착한 막둥이”라며 동료들에게 자랑하던 아들과 부인은 산둥(山東) 성 르자오(日照) 시에서 수속 문제 때문에 아직 출국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성=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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