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사 왜 쓰나” 일지 없앤 경찰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이런 식이면 우리 (당직일지를) 없애 버릴 겁니다.”

6일 오전 3시경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계.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해 다른 손님들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신모(47·무직) 씨가 갑자기 경찰서 조사 대기실에서 대소변을 봤다.

신 씨의 돌발행동으로 새벽에 대소변을 치우느라 애를 먹은 경찰은 신 씨가 형사계 안에서까지 난동을 부리며 용변을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 씨는 경찰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신 씨는 “경찰이 양손에 모두 수갑을 채워 의자에 걸어 두고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는 화장실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화장실을 가겠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며 “나중에서야 한 쪽 손을 풀어 줘 용변을 봤다”고 덧붙였다.

신 씨의 손목에는 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신 씨의 항변이 이어지자 그제야 경찰은 신 씨를 화장실에 보내지 않은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신 씨가 경찰서에 와서도 난동을 부려 어쩔 수가 없었다”고 거듭 해명했다.

용산경찰서 장광 서장에게 물어보자 장 서장은 “보고는 받았지만 잘 모르는 일”이라며 “담당 형사에게 물어 보라”고 말꼬리를 돌렸다.

당직 반장은 한술 더 떠 “왜 이런 걸 기사로 쓰려 하느냐”며 “이런 식이면 당직일지를 없애겠다”고 벌컥 화까지 냈다.

5일 뒤 실제로 당직일지를 없앤 경찰은 “상부의 지시로 당직일지를 없앴다”고 해명했다.

당직일지는 그날그날의 발생 사건과 사건 개요를 기록하는 공문서로 기자들에게는 경찰이 처리한 사건을 파악하는 조사의 기초 자료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 역시 ‘조사실에서 대소변을 본 피의자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는 당직일지의 내용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때문에 경찰은 될 수 있으면 당직일지를 감추고 싶어 한다.

용산경찰서도 “당직기록은 원래 없어도 되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기가 귀찮아 제공했을 뿐”이라며 “따라서 당직일지를 없앤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 신 씨는 결국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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