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입학전형 중 하나인 영재판별검사는 수험생들에게 논술에 가까운 글을 쓰도록 하는데, 문제 의도와 맞지 않는 답안은 아예 점수를 주지 않는다.》
‘민사고 논술’저자 백춘현 교사가 알려주는 ‘글쓰기 ABC’
민사고의 2008학년도 영재판별검사. 19세기 영국이 산업화되면서 농촌과 도시 인구비율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와 함께 공업발달과 함께 영국의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제시문으로 줬다. 그리고 이 시기 영국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쓰라는 문제를 냈다. 많은 학생이 두 제시문에 공통적으로 담긴 문제점인 ‘이촌향도 현상’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본문에 나타난 사실들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이런 학생들의 점수는 ‘0점’.
민사고 1학년들이 공통과목으로 듣는 ‘논술과 토론’ 수업. 여기서도 ‘문제와 제시문을 제대로 읽는 법’을 가장 먼저 가르친다. 민사고 토론연구소장이자 사회과 교사인 백춘현(48) 교사는 “최근 대입 논술시험에서 문제가 요구하는 사항을 잘 따랐는가를 채점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읽는 능력은 공부의 기초가 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사는 민사고의 논술지도 방법을 엮은 책 ‘민사고 논술’의 저자이기도 하다.
민사고는 논술을 구조, 내용, 표현의 세 부분으로 나눠 배운다. 가장 강조하는 게 ‘구조’. 동문서답 식 논술문을 쓰지 않도록 문제나 제시문을 체계적으로 읽는 법, 글을 체계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치는데, 이 부분만은 1학년 공통과목인 ‘논술과 토론’을 통해 모든 학생이 배운다. ‘내용’(배경지식)과 ‘표현’(첨삭지도)은 2, 3학년의 선택과목.
백 교사는 민사고 논술수업 프로그램 중 일반 고교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만한 것으로 이 ‘논술과 토론’ 수업을 꼽았다. 첫 5주간 배우는 기초논술 수업은 방과 후 교육이나 재량활동 시간을 통해 시도해 볼만하다고 추천했다.
주 1회, 2시간씩 진행하는 이 수업의 첫 5주간은 △제시문 요약하기(분석적 글 읽기) △제시문을 주장, 논거, 설명으로 나누기(논증구조 파악) △제시문에서 애매모호한 단어나 논리적 오류 찾아내기(비판적 사고력) △도입-전개-결론으로 나누기(논술의 구조 파악) △토론방법 알아보고(토론의 구조 파악) 단원을 차례로 가르친다.
신문기사, 고전, 학생들이 쓴 글을 제시한 뒤 이를 요약하고 비문을 찾아내는 등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이다. 특히 제시문을 요모조모 뜯어서 분석하는 훈련이 많다. 500자 내외의 짧은 제시문을 준 뒤 △중심 문장을 찾고 △핵심 내용을 30자 내외로 요약한 후 △주제를 다시 자신의 표현으로 풀어 한 문장으로 써 보는 것이다. 또 1000자 안팎의 제시문에서 주장, 논거, 설명에 해당하는 문장들을 찾아 각각 다른 색깔로 밑줄을 긋는 문제도 푼다.
“글의 기본 골격을 먼저 파악한 뒤 제시문을 읽으면 의미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각 문단에서 중심문장을 찾고, 논증구조를 밝혀내서, 전체를 요약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아무리 난해한 글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게 되죠.”(백 교사)
제시문만 정확하게 읽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만, 대입 논술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선 한 가지 ‘특별한 양념’이 필요하다. 바로 ‘창의성’이다.
백 교사는 “논술에서 창의성은 ‘문제를 다르게 읽어 내는 능력’과 ‘주장에 대해 새로운 근거를 마련하는 능력’의 2가지로 요약된다”고 설명했다.
‘안락사는 정당한가’라는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보통 학생들은 ‘안락사에 대한 찬반’으로 경우를 나누어 각 주장에 따른 논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같은 문제를 두고 ‘전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전혀 다른 글을 쓸 수도 있다. 다음은 ‘문제를 다르게 읽어낸’ 답안.
“결국 안락사가 정당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단순한 찬반론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생명의 존엄성을 어떤 기준에 따라 볼 것인가’이다. 안락사를 고려할 만큼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일까, 아니면 생명 자체가 소중한 것이므로 스스로는 죽음을 택하지 못하게 것이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일까.”
결국 ‘문제를 다르게 읽어낸’ 답안은 출제의도를 파악해서 논술문에서 다룰 내용의 범위를 좁힌 다음 이를 매우 구체적으로 써 나가는 방식이다.
한편 “안락사는 잘못이지만 예외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고아로 자라난 한 어머니가 자신도 불치병을 앓게 되자 자신의 자녀도 자기처럼 고아가 되는 것이 두려워 자녀를 숨지게 한 뒤 자살했다’는 뉴스 내용을 예로 든다면, ‘새로운 근거를 마련한’ 답안이 될 수 있다.
백 교사는 “남들과 똑같은 글로는 결코 승부를 낼 수 없다”면서 “논술공부에선 모범답안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비논술적’인 방법이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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