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 그 이름에 늘 충실했을까
“문학은 사회주의 사상뿐 아니라 어떤 한 사상의 단독 통제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문학작품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품으로서 성공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참여와 순수개념’, 서정주, 1963년]
1960년대 우리 문단에서 ‘순수문학-참여문학’ 논쟁이 한창일 무렵, 시인 서정주가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한 발언이다. 문학은 모든 사회적 가치로부터 자유롭게 독자적인 예술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은 그의 이러한 예술관이 잘 반영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시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오랫동안 국정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좋은 시의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다. 시의 제3연에서 국화꽃을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화꽃이 모든 풍상(風霜)을 겪은 후 관조의 경지에 다다른 중년 여인을 비유한 것으로 배워 왔다.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한 서정주는 일제강점기에 친일 활동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장하도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장하도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 공격 대원/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조각조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오장: 일본 육사의 하사
[‘오장 마쓰이’, 서정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제의 자살 특공대인 가미카제를 예찬하고 있는 내용이다. ‘문학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친일사상, 제국주의사상, 반민족주의 등에 심각하게 기울어진 사상편향적인 시라 아니할 수 없다.
다시 ‘국화 옆에서’로 돌아가서, 작품에는 작가의 삶과 가치관이 표현되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국화의 상징을 살펴보자.
“…국화는 칼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황국(黃菊)은 일본에서 14세기 이후로 일왕과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었고,…” [김환희]
② 역시 순수문학을 추구하던 김상용 시인의 잘 알려진 시 한편을 더 보도록 하자.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웃지요.//[‘남(南)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1939년]
이 시는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 의해 애송되고 있는 작품이다. 전원적인 삶의 한가로움과 인생에 대한 긍정과 관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시가 쓰인 시기를 살펴보자. 1939년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야욕을 품고 소위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위해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던 시기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기지화 되고 있었고, 수많은 청년과 학생이 정복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되던 시기였다.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투영한다’는 반영론의 관점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이 시의 내용은 암울했던 그 시대의 삶과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
백보 양보해서 생각해 보면, 시인은 암울한 현실에서 얼마쯤은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일제 말기의 청록파가 자연과 유랑을 노래했듯이. 하지만 김상용의 당시 행적을 보면 그런 추측도 옳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는 일제 말기 김팔봉, 노천명, 김동환 등과 함께 조선 청년들의 징병을 축하하는 친일시를 발표했다.
물결 깨어지는 절벽 이마 위/가슴 헤치고 서서, 해천(海天) 향해 휘파람 부는 듯
오랜 구원 이룬 이날의 기쁨이여 !
말 위에 칼을 들고 방가(邦家)의 간성(干城)됨이/장부의 자랑이어늘, 이제 부름을 받았으니,/젊은이들아 너와 나의 더 큰 광명이 무어랴./나아가는 너희들 대오에 지축이 울리고,/복락의 피안으로 깃발은 날린다. (이하 생략)
* 여기서 ‘님’은 일본 왕[‘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김상용, 1943년]
순수를 지향하던 문인들은 왜 일제라는 권력과 제국주의적인 이념에 참여하는 자기모순에 빠졌을까? 그들의 순수(純粹)는 무엇이었을까? 아니, 애초부터 순수는 없고 반민족적인 논리를 순수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것들이 순수 문학론을 향해 제기되는 역사의 물음일 것이다.
전문규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 ‘순수문학-참여문학’에 대한 자료와 일제하 문학에 대한 더 많은 자료는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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