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대와 달라진 우리 20대
‘사회적 존재가 의식 좌우’
한물간 마르크스의 언명을
몸소 느끼고 있지 않을까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조건지운다.”
‘자본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마르크스가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한 말이다. 이는 개인이 처한 계급적 위치나 경제적 토대가 그의 의식을 조건지운다는 말이다. 이 같은 마르크스의 언명은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현실 타당성을 상실한 말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지금 마르크스의 언명을 말이 아닌 온몸으로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의 20대들이다. 지금의 20대를 ‘88만 원 세대’라고 하는 것은 성인 비정규직의 평균 월 급여인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임금 비율인 74%를 곱해서 얻은 금액. 20대의 평균임금이 88만 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20대가 마르크스의 언명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개성이 강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20대의 이미지와 한물간 사회주의 이념의 근간인 유물론적 언명 사이에 어떤 상관성이 있단 말인가? 마르크스와 친화성을 갖는 건 오히려 그들의 윗세대였던 속칭 ‘386세대’가 아니었던가? 386세대와는 다르게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우선 나의 스펙(취직하려는 사람들이 학점 학력 영어점수 등을 합한 것)을 높이겠다”고 말하는 20대. 그들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비정규직 문제나 기업 비자금 문제 등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대의 이 같은 반응을 88만 원 세대의 개인적 취향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어떤 것도 자연적이지 않다”고 말한 보부아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의 구조적 요인이 이런 반응에 영향을 주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88만 원 세대의 이런 태도와 대응이 시장을 향한, 시장에 의한 공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외환위기 사태로 대량실업의 한가운데에 내몰렸던 10년 전의 40대, 즉 지금의 50대가 바로 88만 원 세대의 부모 세대라는 점은 88만 원 세대가 시장 지향적인 태도를 갖게 된 기원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자만이 아니다. 1990년대 자본주의의 풍요한 속살도 맛보았지만 시장의 냉혹함에 내동댕이쳐진 그들 부모 세대는 그러한 문화적 유전자까지도 88만 원 세대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부모 세대의 모습을 통해 공동체, 회사, 친족, 심지어는 가족조차도 개인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한 88만 원 세대. 그들은 자연적으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다른 구성원과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해결책을 찾는 게 최선이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서로 다른 해결책, 경쟁 혹은 연대! 이게 88만 원 세대, 아니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두 가지 선택의 길은 아닐까.
홍영용 학림학원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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