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양국 문인들이 만난 자리에는 작가 서영은 씨도 참석했다. 그가 이 자리에 참석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두 달 전 19살 난 베트남 신부가 나이 많은 한국인 남편에게 매를 맞아 처참하게 숨진 사연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갈비뼈가 18곳이나 부러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트남이 들끓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그때 서 씨는 어린 딸 후안 마이를 머나먼 이국땅에 시집보낸 어머니의 시린 가슴이 문득 떠올랐다고 한다. '딸이 모진 매를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가슴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 때부터 연락이 닿는 지인들에게 취지를 알리고 얼마간의 돈을 갹출했다.
돈을 전달할 방안을 찾던 서 씨는 마침 베트남 문인들의 방한 소식을 들었다. 서 씨는 몸져 누워있을지도 모를 후안 마이의 어머니에게 위로의 글과 함께 이 돈을 전하기 위해 참석했다. 서 씨가 모은 돈을 꺼내자 현장에 있던 한 여류 문인도 십시일반 돈을 냈다. 미화로 3000달러가 조금 넘는 이 돈과 함께 위로의 글을 봉투에 넣어 베트남 문인들에게 전했다.
당시 한국에 온 베트남 문인 중 좌장은 노(老) 시인이었다. 베트남 국민시인으로 통하는 찜짱 시인(70)은 형형한 눈빛으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통역을 통해 "이 돈과 글을 후안 마이의 모친에게 꼭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호치민시 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원로 시인으로 대표작 수련꽃은 국내에도 소개돼 있다.
베트남 신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 신부 중 베트남 출신이 9800여명이나 된다. 전체 외국인 신부 중 30%가 조금 넘는 규모로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 문화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 베트남 신부들은 국내 적응과 권리 주장이 쉽지 않은 예가 많다.
특히 후안 마이가 겪은 비극은 다문화사회로 옮겨가는 한국사회의 그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응우옌 민 찌엣 베트남 주석이 지난해 연말 "한국에 사는 베트남 여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도와 달라"는 당부의 말까지 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법과 제도의 개정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날이 저문다. 밤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보인다. 혹시 후안 마이의 원혼이 차가운 겨울 하늘을 떠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후안 마이, 너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신 모친에게 용서를 빌고 위로의 글을 보내지 않았니. 이제 한을 풀고 남십자성이 보이는 따뜻한 고향 하늘로 돌아가기를 빈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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