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으로 읽는 시사이슈]대형참사와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 입력 2008년 1월 21일 03시 00분


환경오염…유독물질 확산…

현대사회의 대형 재난은

바로 산업화의 ‘부메랑’

과학기술 맹신 벗어나

이젠 진지한 반성 할때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대형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말을 ‘대한민국은 참사(慘事) 공화국’이라고 바꿔도 무방할 만큼 많은 사고와 재난으로 신문의 사회면이 채워지고 있다.

지나간 2007년과 새로 맞이한 2008년도 대형 참사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에는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과 허베이 스피릿호의 충돌로 인한 기름 해상 유출사건이 온 국민의 마음을 검게 뒤덮어 놓았다. 그리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이런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비판하고 국가적인 안전 시스템의 강화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리고 각종 참사가 사람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인재(人災)라는 점을 강조하는 기사도 매번 되풀이해서 실리고 있다.

하지만 대형 참사는 어느 순간 일상에서 지워지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완전한 망각에 접어들 즈음에 다시 한 번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참사의 원인을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에서만 찾아내는 것은 단편적인 분석에 불과할 뿐이다.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대형 참사, 대형 위험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위험사회’라는 책에서 대형 재난과 위험은 다름 아니라 근대화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까지 근대의 산업사회를 뒷받침해 온 과학기술의 발전이 바로 환경위기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위험을 낳은 원인이라는 것이다.

오존층 파괴라는 위험은 바로 CFCs라는 화학물질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근대 이전의 위험과 근대 이후의 위험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규정한다.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부스는 확실히 ‘위험’한 모험에 도전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위험일 뿐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대기오염, 유독물질 확산, 방사능 물질 유출 등은 사회집단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의 위험이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위험은 인간의 예측능력과 지각능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미리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태안 기름유출 사건의 경우는 파고가 높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해상 크레인 이동, 이천 화재사건의 경우는 허술한 안전관리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대형 건축물들과 대형 기계들로 가득 차 있는 현대사회는 본질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가득 찬 고속도로와 100층에 육박하는 대형 건축물은 그 자체로 대형 참사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풍요사회’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근대화의 과정이 바로 ‘위험사회’로 귀결되는 지금 이 시대의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신뢰해 온 과학기술과 근대화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전 불감증을 탓하는 일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 위험을 생산하는 사회의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할 때 우리는 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강상식 학림학원 논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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