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뭔가 흥미진진하고 낭만적인 냄새가 난다고요?
아닙니다. 이 영화는 투명인간이 된 한 남자의 내면이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통해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걸까?’
아니, 도대체 투명인간과 인간 본성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아무도 날 못보니까”… 투명인간이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
[1] 스토리라인
천재 과학자 ‘케인’(케빈 베이컨) 박사. 자신을 전지전능한 신(神)이라 자처하는 그는 미국 국방부의 비밀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으니, 그건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할로우 맨’ 프로젝트였습니다.
실험용 고릴라에 대한 투명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케인. 성공을 향한 열망에 불타던 그는 국방부 몰래 비밀실험을 강행합니다. 자기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투명체가 되는 약물을 투여한 것이죠.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케인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투명인간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실험이 실패하고만 것이죠.
극도의 신경증에 시달리던 케인. 그의 내면에선 숨겨졌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연구실에서 몰래 빠져나간 그는 평소 짝사랑하던 건너편집 여성을 성폭행하고 점차 동료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로 변해갑니다. 급기야 할로우 맨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려던 국방부 관리까지 살해하기에 이르죠.
아, 케인은 악마가 되어 버린 걸까요? 동료들을 연구소 안에 가둔 그는 자신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동료들의 입을 막고 세상 유일의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그들을 하나 둘 무참하게 죽입니다. 이에 케인의 동료 연구원이자 옛 애인인 ‘린다’(엘리자베스 슈)는 케인의 악행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만약 여러분이 영화 속 케인 박사처럼 어느 날 투명인간이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겠습니까? 아마도 “여자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 실컷 구경하고 싶어요” “은행을 털고 싶어요” “평소 날 괴롭히던 녀석을 찾아가 복수하고 싶어요” 같은 대답을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실제론 여자 목욕탕에 들어가거나 은행을 털거나 친구를 실컷 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그런 행위는 남들의 눈에 띌 것이고, 결국 여러분은 행동에 대한 책임(예를 들면 교도소에 가는)을 져야 하니까요.
영화 ‘할로우 맨’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이겁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나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결국 한 인간이 투명인간이 된다는 건 그 순간부터 자신의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가감 없이 실천하게 될 여건이 조성된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란 말입니다.
투명인간이 된 케인은 이죽거리며 동료에게 말합니다.
“이거 알아? 아무도 내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면,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영화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매우 암울한 탐구 보고서인 셈입니다. 어떤 통제도 감시도 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누구라도 성욕과 폭력욕에 지배되는 들짐승의 본능을 드러내리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이런 이기적이고 악한 인간의 본성을 오래전 갈파한 인물이 있었으니, 영국 철학자 홉스(1588∼1679)가 바로 그입니다. 홉스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어서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결국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있을 뿐”이라면서 “그래서 사람들 간 계약을 통해 국가를 만들어 개인의 자연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3] 이렇게 깊은 뜻이?
이거 아세요? 그 이름도 빛나는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기원전 347?). 투명인간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원조’는 바로 그라는 사실을 말이죠.
플라톤이 쓴 ‘국가론’에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리디아 왕국에 기게스라는 양치기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지하 동굴에서 정체 모를 황금반지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반지를 끼는 순간 그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죠. 결국 기게스는 반지를 이용해 투명인간이 됩니다. 왕을 살해하고 왕비를 범하고 리디아 왕국을 차지하지요.
어떤가요? 기게스의 반지 얘기를 듣는 순간 유명한 영화 한편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난쟁이 ‘프로도’는 ‘절대반지’의 유혹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입니다. 손가락에 끼는 순간 자신의 모습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림과 동시에 세계를 지배할 권능을 갖게 만드는 절대반지. 이 반지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가 않지요.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권력’이 생긴다면 인간은 어두운 욕망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니….
[4] 이건 몰랐지?
영화 속 단연 최고의 장면은 케인 박사가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조목조목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투명인간이 되는 약물을 직접 자신의 혈관에 주사한 케인. 그는 먼저 피부가 투명해진 뒤에, 근육이 투명해지고, 내부 장기가 투명해지고, 핏줄이 투명해진 뒤, 마지막으로 뼈마저 투명해지면서 완전한 투명 상태가 되지요.
하지만 이 장면에 과학적인 오류가 있다는 사실, 혹시 아십니까? 약물을 혈관에 먼저 투여한 만큼, 투명해지는 신체 부위의 순서는 당연히 ‘핏줄→심장→기타 장기 및 근육→뼈’가 되어야 하지요.
[5] 알쏭달쏭 퀴즈
영화에선 투명인간이 된 케인 박사가 “어젯밤 한잠도 못 잤다”고 동료에게 투덜댑니다. 투명인간이 되면 눈꺼풀도 투명해질 테니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앞이 훤히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눈을 뜨고 자는’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지요.
투명인간이 왜 앞을 볼 수 없느냐고요?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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