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비닐하우스나 축사로 보이는 건축물 수 백 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대규모 농촌 지역을 연상케 했다.
소나 돼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축사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의류용 지퍼가 가득 쌓여 있었다.
다른 비닐하우스나 축사도 농작물이나 가축이 아닌 옷, 가구, 포장물 등이 잔뜩 쌓여있었다.
이 곳은 창고나 공장이 들어설 수 없는 그린벨트 구역.
이들 창고 용도의 비닐하우스와 축사는 모두 불법 시설물이었으며 비닐과 목재가 뒤섞인 창고에 구멍을 뚫고 전기선을 끌어 쓰는 등 화재 위험성도 높아 보였다.
●"중소기업용 창고 있었으면 안 지었을 것"
최근 40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의 화재 참사를 계기로 불법으로 건축되거나 운영되고 있는 창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도 당국의 관리가 소홀해 이 같은 불법 창고는 '제 2, 제 3의 이천 참사' 위험성을 안은 채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건축비와 물류비를 아끼기 위해 그린벨트인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대도시 인근에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남시 초일동에서 만난 가구업체 사장은 "대기업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경기 이천 등에 대형 물류창고를 운영할 수 있지만 (우리 회사는) 물동량이 작아 100평 정도의 소규모 공간만 필요하고, 또 자금력이 없어 어쩔 수없이 이곳의 불법창고를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중소업체들을 위한 물류센터가 부족하다보니 업체들이 경기 하남, 시흥, 광명, 남양주시 등에 비닐하우스나 축사로 위장한 불법 창고를 계속 짓고 있다는 것이다.
●"임대료에 비하면 벌금 '껌 값'
이 지역 주민들이 앞 다퉈 창고 임대업에 뛰어드는 것도 불법 창고 양산을 부채질 하고 있다.
농사만 지어서는 충분한 수입을 얻기 힘든데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2001년 그린벨트 내 축사에서 가축마저 기를 수 없다는 조례가 나오면서 기존 축사를 창고로 임대해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
경기 하남시 풍산동과 초일동 일대 중개 업소들에 따르면 330㎡(100평) 규모의 축사 한 개면 연간 2400만 원가량의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들 불법창고는 축사로 등록돼 세금이 많지 않고, 상업용 건물처럼 관리비가 따로 들지 않는 것도 이점이다.
시청 단속에 걸려도 이행 강제금은 600만~700만 원 수준이어서 '세금 내는 셈' 치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하남시 풍산, 초일, 망월동 일대에서 도로에 가까운 불법창고는 3.3㎡당 400만 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토지컨설팅업체인 JMK플래닝 진명기 사장은 "지방의 일부 공장주들은 사업을 접고 공장을 판돈으로 수도권 일대에서 창고 임대업을 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린벨트 일부 해제해 물류센터 조성해야"
특히 하남시는 전체 면적의 83.6%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불법창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00~2006년 경기도의 그린벨트 내 불법행위 적발건수는 총 1만2693건으로 이 가운데 하남시가 5402건(42.5%)으로 가장 많았다.
하남시 자체 통계에도 전체 창고(4800개) 중 현재까지 파악된 불법 창고는 2600여개로 절반이 넘는다.
하남시 관계자는 "민선 시장이어서 예전처럼 경찰력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없고, 상당수 주민들이 불법창고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손을 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시청은 하남시의 불법창고 소유자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민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전문가들은 불법창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그린벨트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남시 불법창고에 관한 연구논문을 낸 구경서 강남대 전 겸임교수(정치학)는 "고속도로가 가까워 도로가 따로 필요 없는 곳을 중심으로 그린벨트를 풀어서 중소기업을 위한 물류센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 박종흠 물류정책팀장은 "그린벨트의 일부 해제를 검토하고 있지만, 환경부를 비롯해 건교부 내 일부 부서도 그린벨트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린벨트가 잘못 자리 잡은 '전봇대'인지, 환경 보호를 위해 절대로 해제해서는 안 되는 제도인지, 새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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