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최상철 씨가 말하는 ‘공직사회 전봇대’

  • 입력 2008년 1월 26일 02시 49분


“폭우 대비 파이프, 규격 다르다고 공장등록 안해줘”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전봇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전국에 널려 있습니다. 우선 공무원들의 ‘전봇대 마인드’부터 뽑아 내야 합니다.”

2006년 말 공직사회의 불합리한 규제 실태를 고발한 책 ‘기업 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를 펴내 화제를 모은 공무원 최상철(사진) 씨.

감사원 소속 기업불편신고센터에서 일하며 이 책을 냈던 최 씨는 요즘 노동부 산하 서울남부종합고용지원센터의 취업지원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추진하는 각종 규제 혁파에 대해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직생활 34년째인 최 과장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출범하면서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오래지 않아 공무원들의 조직적 저항에 부닥쳤다. 지금의 저항도 그와 비슷하다. 필사적일 거다. 이것부터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감사원 근무 시절 보고 접한 규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했다.

몇 해 전에는 중소기업을 하는 A 씨가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땅을 사 공장을 지었는데 시청에서 공장 등록을 받아 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신고 때와 다른 규격의 폭우 대비용 파이프를 공장에 설치했는데 이를 보고하지 않아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것.

감사원은 조사 결과 “반드시 시청이 지정한 규격의 파이프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고, A 씨는 가까스로 공장 등록 허가를 받았다.

최 과장은 이런 관행을 바꾸려면 규제에 대한 공무원들의 집착의 속성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공무원이라도 규제나 단속권을 내놓으라고 하면 고개를 가로저을 겁니다. 공무원들이 한국 사회에서 ‘갑(甲)’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죠.”

공직자의 시각이 아니라 철저히 민간의 눈높이에서 규제를 바라봐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공무원이 ‘구름 위에서’ 관련 정책을 만들다 보니 현장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불산단 전봇대가 대표적인 사례죠. 새 정부는 부디 ‘내가 사장이고 종업원이고 그들의 가족이다’라는 생각으로 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 과장은 다음 달 초 ‘기업 하는 사람들이…’의 2편 격인 ‘공무원 2.0 시대’라는 책을 낸다. 공무원의 마인드도 웹 2.0처럼 쌍방향 소통으로 바뀌어야 하고,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호소를 담을 계획.

“서울 노량진의 학원들에 ‘공시족’이 넘쳐난다는데 민간 기업보다 고용 안정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도전한다면 지금이라도 접으라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공직사회도 경쟁과 효율 위주로 재편돼야 한국의 경쟁력이 높아질 테니까요.”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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