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군수실과는 달리 복도 반대편 부군수실에는 크고 작은 화분이 이어졌다. 경북도의 인사에 따라 이날 안성규 부군수가 부임한 것을 축하하는 화분이었다. 청도가 고향인 그는 오후에 열린 취임식에서 “이번 일로 행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모두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1층 민원실을 찾은 주민은 “엊그제 취임한 군수는 구속되고 부군수는 새로 오고 청도가 영 어수선하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한 직원은 “최근에 청도에 좋은 뉴스거리가 있었는데 선거 수사 때문에 묻혀 버리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좋은 뉴스’란 특산물인 반시(씨 없는 납작감)와 감말랭이의 청와대 납품을 가리킨다.
‘청렴의 고을’ 청도군의 분위기가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군수와 선거운동원 22명이 구속된 이후 군청이 있는 화양읍은 물론이고 인근 청도읍에서도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다.
주민이 구속된 마을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지인이라는 느낌이 들면 주민은 경계부터 하는 눈치다. 화양읍의 이장은 “죽고 감옥 가고 난리인데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군청 근처 식당의 50대 여주인은 “이번에 크게 당했으니 재선거를 하면 돈 돌리는 건 사라지지 않겠느냐. 그나저나 경찰이 주민을 얼마나 더 조사할지 모르겠다”며 수사 진행 상황을 물었다.
경찰은 돈을 받은 주민이 자수하면 최대한 선처한다는 방침이다. 벌금형을 받으면 50배 과태료는 물지 않는다는 점도 알리고 있다.
주민 사이에 “속으로 곪던 게 이제야 터진 거다. 이번 기회에 돈 선거만은 기어코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화양읍 모 병원의 의사는 “선거를 앞두고 돈 이야기가 쫙 퍼졌다. 이왕이면 돈 주는 후보를 찍겠다는 말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청도의 미래를 위해 돈 선거라는 악습을 뿌리 뽑을 수 있다면 마음 아프지만 이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이런 점에 공감했다. 청도군 선관위 관계자는 “지도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유권자도 문제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수천 명에게 돈을 살포했는데 한 명도 신고하지 않았다”며 “신고하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데다 혈연 지연으로 얽힌 채 은밀하게 돈이 오고 가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선거 파문은 투표를 며칠 앞두고 익명의 제보자가 “돈을 돌리는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불거졌다.
청도신문의 장재기(48) 편집국장은 “농협조합장 선거,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돈 선거가 습관처럼 굳어져 돈으로 표를 사고파는 데 모두들 둔감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최대한 빨리 수사를 마무리해 정 군수를 기소할 방침이다. 기소되면 군수 권한이 정지된다.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당선이 무효화된다.
대법원 판결까지 감안하면 10월경 재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청도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군수 선거를 하게 된다.
선거비용은 5억 원가량. 군민(4만6000여 명) 한 사람이 1만 원씩 부담하는 셈이다.
군청에서 7km가량 떨어진 청도읍 신도1리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전시관 신축 공사를 비롯해 새마을 발상지를 가꾸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우권(40) 이장은 “1960년대 주민이 힘을 모아 전국적인 모범마을로 우뚝 서지 않았느냐”며 “이번에 큰 상처를 받았지만 청도 주민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새마을운동 정신이 솟아나도록 해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도군은 특산품의 청와대 납품을 기념해 2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감말랭이 등의 판촉 활동을 펼 예정이다.
농업기술센터 예규길 유통계장은 “선거 때문에 청도가 갑자기 전국에 알려졌지만 청도 명물은 감”이라며 “아픔을 씻어내고 일어설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도=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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