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업 가능 교사 60%… 28%만 실제 수업
회화 힘든 교사들은 문법-독해 전담도 대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사 충원 등 체계적인 준비를 거쳐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실 있는 영어교육을 위해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사 △말하기 듣기 중심의 교재 △학교 및 국가 수준에서 영어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기존 교사 활용 방안이 중요”=29일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 영어교사 1만4701명 가운데 영어로 수업 진행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교사는 60.3%, 실제로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는 28.4%뿐이다.
전국 2159개 고교에 배치된 원어민 교사도 652명에 불과해 이들만으로 영어수업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교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33.1명인데 교사 1명이 이 인원을 대상으로 말하기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실 있는 영어강의를 위해서는 회화 능력을 갖춘 1만여 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수위는 테솔(TESOL) 같은 영어교육자격증 소지자나 해외교포 등 영어에 능통한 자원에게 교사 문호를 개방해 영어전용교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연간 15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영어강의 능력이 없는 교사에게 문법, 어휘, 독해 강의를 맡기는 등 업무를 분담해 기존 교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서울대 권오량(영어교육) 교수는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의 실태부터 조사해야 한다”며 “교사의 정확한 발음과 문법을 강조하기보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하기 중심 교재 개발해야”=영어교육을 개혁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의 교육과정을 다시 설계하고 영어 교과서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는 단원별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역이 있지만 말하기 부분은 2쪽에 불과하고, 수업시간에도 영어 테이프를 듣거나 따라 읽는 것이 고작이다.
말하기와 듣기 교육을 강화하려면 말하기 중심의 교재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 잠실고 양성진(영어) 주임교사는 “3년 전부터 교육청 등을 통해 영어강의를 권장하는 지침이 내려오고 있지만 제대로 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며 “말하기와 듣기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재와 지도서 개발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평가방법 개발이 관건”=너무 높은 수준의 말하기 능력을 요구하면 영어유치원이나 조기유학 등 영어 사교육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따라서 국가 수준의 영어능력평가나 교내 영어 말하기 평가는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
현재 3학년부터 시작하는 초등 영어교육이 저학년으로 확대되는 만큼 초중고교의 학년별 말하기 듣기 능력 기준을 개발하고, 수준별 수업과 수준별 평가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0년간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 중인 서울 영훈초등학교 심옥령 교감은 “말하기 능력의 경우 별도의 시험 없이 자연스러운 발표와 일상생활 속에서의 어휘구사력 등을 통해 학년별 도달목표를 달성하는지 여부를 살피고 있다”며 “평가를 너무 강조하면 사교육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양정호(교육학) 교수는 “교내 영어능력평가는 일기쓰기나 발표하기 등 수행평가 중심으로 일상생활의 말하기 능력을 강조하고, 국가 수준의 시험은 학년별 성취 기준을 정해 도달 여부(Pass/Fail) 평가 방식으로 운영하면 사교육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