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 껐지만 올겨울 버틸 수 있을지…

  • 입력 2008년 2월 1일 02시 42분


충남도의회 의원들이 31일 태안군 태안읍내의 유류사고지원총괄본부에서 회의를 한 뒤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도의회의 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지역지원특별위원회 소속이다. 태안=연합뉴스
충남도의회 의원들이 31일 태안군 태안읍내의 유류사고지원총괄본부에서 회의를 한 뒤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도의회의 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지역지원특별위원회 소속이다. 태안=연합뉴스
어장 완전회복-정식보상 기약없어

일부지역선 자금 배분놓고 갈등도

“이거 정말, 돈이 손에서 모래 빠져나가듯 하네요.”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의 김상문(57) 씨는 지난달 30일 아침 일찍 여객선을 타고 태안읍으로 나왔다.

전날 받은 정부의 생계자금으로 대출이자를 갚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다. 가의도는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특별재난지역(6개 시군) 가운데 생계자금이 처음 지급된 곳.

350만 원(정부의 생계자금)-30여만 원(석 달째 밀린 수협 대출금 2000만 원의 이자)-30여만 원(전화료, 공과금)-100만 원(두 달치 난방 유류비)-20여만 원(설 제수비용)…=?

수협 통장에는 350만 원이 찍혔지만 계산을 할수록 한숨이 나왔다. 그는 “다음 달이면 대학에 다니는 아들 녀석의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온다”며 “옷을 껴입어 난방비라도 줄여야 할 모양”이라고 말했다.

생계자금은 태안군 등 6개 시군에 모두 558억 원(충남도 예비비 포함)이 풀렸다. 가구당 많아야 600만 원, 적으면 100만 원 이하.

설이 지나면 다시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어장이 언제 회복될지, 정식 보상이 언제쯤 이뤄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전남 여수 앞바다 시프린스호 사고의 경우 3년여 만에 보상금이 지급됐다.

금융기관의 특별융자 지원은 겉돌고 있다. 농협충남지역본부는 지난달 중순부터 1000억 원을 융자하기로 했으나 신규대출이 하나도 없다. 대출 서류에 피해액 확인서를 첨부해야 하는데 피해 조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충남도 관계자는 “펜션 등의 경우 기존 대출금이 많아 아예 대출 대상에서 제외된 곳이 많다”며 “정부에 대출 요건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계자금이 나오면 나아질 것 같던 민심은 배분을 둘러싼 갈등으로 더욱 흉흉해졌다.

31일 오전 원북면사무소에서 어민 전모(54·신두리) 씨가 “우리 마을 생계자금이 적은 이유가 뭐냐”고 항의하며 흉기로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 일부를 잘랐다.

신두리는 피해 정도에 따라 마을별로 A(가구당 600만 원) B(300만 원) C(100만 원) 등 3등급으로 분류됐다. 전 씨의 마을은 B등급이다.

이에 앞서 소원면 의항리 주민 500여 명은 30일 태안군을 항의 방문해 생계자금 수령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의항리와 인근 신두리(원북면)는 인접해 있고 피해 정도도 비슷한데 의항리 A등급(해안가)이 신두리의 같은 등급보다 200만 원 적다는 이유였다.

의항2리 이충경 어촌계장은 “태안군이 실제 피해어민 수를 감안하지 않고 읍면별 인구로 생계자금을 지급했다”며 “엉터리 행정이 이웃을 갈라놓았다”고 분개했다.

주민 사이도 멀어지고 있다. 25일 태안읍내의 A마을 주민들은 인근 B마을을 찾아가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생계자금을 못 받게 생겼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B마을 주민들이 회의를 열어 “우리 마을은 직접적인 기름 피해 지역이 아니니 실제 어려운 어민들을 위해 생계자금을 포기하자”고 결의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충남도의회 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지역지원특별위원회는 31일 “앞으로 계속될 피해 지역민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 배상금을 우선 지급하고 피해 지역을 특별 해양복원 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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