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논제는 ‘학교 청소는 학생이 해야 한다’였다. “청소는 학생들의 인성과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교육자 몬테소리는 아이들에게 옷 입는 방법과 예절 지키는 법, 청소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찬성 측 발제자 이영경) “학생들이 청소하는 학교의 교실 공기 오염도가 기준치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청소 전문회사에서 맡는 게 학생들의 건강에 좋습니다. 월 50만 원, 즉 학생 1인당 3500원 정도 내면 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반대 측 발제자 서준호)》
타협은 없다… 무승부도 없다… 상대논거를 무릎꿇려라
논리전쟁
“학교 교육은 지적 성장만 중요한 게 아니고 인성이나 사회성 같은 다른 요소도 중요합니다.”(찬성 측 제1논박 강대은)
“인성이나 사회성을 기르는 것은 다른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꼭 청소를 통해서만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반대 측 제1논박 김민지)
“청소는 노동의 가치도 배우게 해 줍니다. 청소를 하면서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보다 더 소중합니다.”(찬성 측 제2논박 주예은)
“전인교육은 초등학교 교육의 목표이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지적 능력 향상이 첫째 목표입니다.”(반대 측 제2논박 노현민)
“청소를 안 하는 학생이 있기 마련인데 청소를 하는 학생은 ‘왜 나만 해야 하나’ 하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안 하는 학생은 자신의 의무를 빠져 나가게 되는 법을 미리 배우게 되는 역효과를 냅니다. 청소를 통해 인성과 사회성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깁니다.”(반대 측 정리토론 김유진)
“학교 교육의 목표는 공부가 아닙니다. 공부만 하고자 한다면 학원을 가지 왜 학교에 가는지 묻고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자기와 다른 학생을 보면서 사회성을 배웁니다.”(찬성 측 정리토론 김영현)
○초중고교생 이틀간 기초교육 받은 후 실전게임
TV 프로그램 ‘100분토론’처럼 날선 말을 주고받다가 결론 없이 끝나는 토론과 달리 민사고 토론 캠프에서는 모든 토론에서 승부가 갈린다.
찬성과 반대는 공존할 수 없고, 타협은 불가능하다. 한 쪽의 패배와 다른 쪽의 승리가 있을 뿐이다. 게임의 룰도 정해져 있다.
미리 정해진 시간과 순서에 따라 발언을 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고 상대방의 논거를 허물어뜨려야 한다. 논거가 부딪친 경우에는 논거가 많이 살아남은 쪽이 이긴다. 토론이 평행선을 달렸을 때는 찬성 팀의 승리다. 증명 부담이 있는 찬성 팀이 무승부를 이끌어 낸 것은 실제로는 이긴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누가 이겼는지는 판정단의 몫이다. 예선은 민사고 졸업생들이, 결승은 교사 토론 교육 워크숍에 참석한 교사 중 선발된 5명이 판정단이 된다. 이기면 7점, 지면 4점을 받고 승패와 관계없이 우수 토론자로 뽑히면 보너스 3점이 주어진다.
발음법과 발성법,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 논술 쓰기 등 토론에 필요한 기초 교육을 이틀간 받은 뒤 입소 4일째부터 실전에 들어간다.
5번의 실전 토론을 통해 토론 실력도 쌓고 결승 진출자도 뽑게 된다.
승패가 바로 결정되기 때문에 학생들한테는 스트레스인 동시에 승부욕을 자극하게 된다. 민사고 유동훈 교사는 “밤을 새워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취침 시간을 밤 12시로 정했더니 오전 5시에 일어나서 토론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은 사생활 보호보다 우선한다’는 논제로 벌인 토론에서 우수 토론자로 뽑힌 김현준(서울 청운중 2년) 군은 “시간이 없어서 점심도 건너뛰고 토론 준비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김서로(서울 월촌중 1년) 양은 “매일 시험을 2, 3개씩 보는 것 같다”며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쟁 2.34 대 1…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로 선발
민사고 토론캠프는 지원하면 모두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참가비가 80만 원이지만 올 겨울방학 캠프 때 96명 모집에 225명이 지원했다.
올해는 초등학교 6학년생 24명, 중학교 1학년생 32명, 중학교 2학년생 40명을 선발했다. 중학교 3학년은 참가 기회가 없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생을 가장 많이 뽑는다.
7월 말에 열리는 여름방학 캠프는 6월에, 1월 말에 열리는 겨울방학 캠프는 11월에 인터넷 홈페이지(debate.minjok.hs.kr)를 통해 모집한다.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가 선발 기준이지만 특정지역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출신지도 고려한다. 캠프를 주관하는 민사고 부설 토론교육연구소 백춘현 소장은 “학교 성적은 전혀 반영하지 않지만 사교육의 기회가 적은 지방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지역은 감안한다”며 “지원자가 많은 서울 등 수도권 학생들은 좀 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 캠프가 학생들을 끄는 힘은 민사고라는 브랜드와 토론이라는 콘텐츠다.
민사고는 방학 때마다 토론 캠프 외에 과학영재 프로그램과 영어영재 프로그램도 개최하는데 토론 캠프 경쟁률이 가장 높다.
“평소 민사고가 궁금했는데 민사고도 둘러보고 토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지원”(김민지·부산 부흥중 2년)했다거나 “유엔 사무총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밑거름이 될 토론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이초록·경기 고양시 가좌초 6년) 참가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캠프에 입소하게 되면 6박 7일 동안 민사고 기숙사에서 머물면서 민사고 재학생에게 적용되는 규율에 따라 생활하게 된다. 민사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는 민사고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떨어지는 학생들은 재수도 불사한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학생 중 25% 정도는 ‘재수생’이라고 한다.
기껏해야 방학 캠프인데 재수까지 해서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평소 토론할 때 떨렸지만 캠프에 참가하고 나서 불안감이 덜하다”(김준환·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중 1년)거나 “말을 조리 있게 못했는데 실력이 부쩍 향상된 것 같다”(양혜원·경북 포항시 이동초 6년)는 말을 듣고 나니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횡성=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