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전국이 영어교육에 대한 이슈로 연일 뜨겁다. 공교육 정상화 문제와 관련해 수능 과목의 수를 줄이는 문제와 맞물려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자는 취지로 제기된 ‘영어 몰입교육(English Immersion Program)’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기존 학교 교육과정과 교사 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할 때 이에 대한 학교 현장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영어 몰입교육은 영어뿐만 아니라 일반 과목도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 방식이다. 캐나다, 핀란드, 싱가포르, 홍콩 등 세계 1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일부 외국어고교와 초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다. 영어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유학생이 많은 현실에서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되지는 않을지 살펴보자.
▶ 찬성 논거
영어가 국제 언어로서 기능을 하고 있고 그 영향력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현실적 필요성과 시대적 당위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영어 교육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영어 몰입교육은 고려할 만하다. 연간 50억 달러 이상을 해외 유학과 연수비용으로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공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영어 능력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절실하고도 필요하다.
영어 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한국 문화가 쇠퇴하거나 사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족 문화를 국제어인 영어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세계인이 우리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문화적 활력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중 언어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인지적, 문화적 능력의 신장은 엄청나다.
영어 발음을 능숙하게 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혓바닥 아랫 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이 있을 정도로 영어 교육 광풍이 몰아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영어 몰입교육은 사교육비 문제와 영어 격차(English Divide)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반대 논거
영어 능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의 경쟁력과 국가적 경쟁력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사고력과 창의력, 통합적 능력 없이 언어적 능력만 신장되었다고 해서 경쟁력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도구이므로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인간 자체의 자질이 관건인 셈이다.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학교 교육을 강화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성급한 제도 개선은 위험하다. 교육은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급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 교육에 매진할 경우 교육의 목표 자체가 실종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수준 높은 영어 구사 능력을 신장시킬 방안을 보통 교육 체제에다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치다.
○ 핵심 찌르기
우선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공교육 정상화와 이른바 ‘3불 정책’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에서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어난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한 것이고 유의미한 것이나, 우리의 사교육은 공교육의 절대적 품질 수준과 상관없이 학부모와 학생들이 경쟁자들에 대해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려고 하는 욕망 속에서 등장한 것임을 감안할 때,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영어 격차’는 가정 경제력의 차이로 자녀 영어 실력의 차이가 발생하고, 자녀 세대가 가진 영어 구사 능력의 차이가 다시 다음 세대의 빈부 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는 현상을 말한다. 영어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영어 몰입교육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논거가 ‘양날의 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피상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
○ 논술 쓰기
시사 이슈는 넘쳐난다. 주류인 사람은 그러한 이슈에 나름의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냥 지나치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과 논란이 발생하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에 대해 흥미를 갖고 접근해 보자. 자신의 주장을 정해 보고 반대 주장의 논거를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자신의 논거를 다듬어 보자. 그러한 과정에서 사고력이 신장된다. 논술 쓰기가 단순한 지식의 나열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하게 된다.
과거에도 영어 공영화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했던 적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해 나가자.
○ 관련 문제
영어 공영화론에 관한 찬성, 반대의 제시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주장을 10∼12줄(250∼300자) 분량으로 논술하시오. [동국대 2006학년도 정시]
권윤호 경기 용인 풍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