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말은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가 쓴 ‘군주론’의 일부이다.
일반적으로 마키아벨리즘은 권력자들의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하며 잔악한 권모술수를 뜻하고, 심지어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이 책만큼 커다란 오해를 받는 책도 드물다. 》
사소한 양심에 지도자 흔들리면 사회 붕괴
그러나 테러적 강압통치가 미덕일순 없어
오늘날 상식이 된 ‘사악한 마키아벨리’라는 통념은 역사적으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시기에 교황과 교회가 자신들과 대립했던 군주들이 저지른 잔악 행위들에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에 의해 ‘군주론’은 ‘부도덕한’ 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1559년 교황청에 의해 금서(禁書)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념은 과연 사실일까?
마키아벨리는 1495년 피렌체에서 반란이 일어나 전제정치를 하던 메디치가가 추방당하고 공화국이 복구되면서 자유를 보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을 보았다. 마키아벨리가 생각하기에 반란 지도자는 상당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공화정을 위한 강력한 단안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반란 지도자 피에로 소데리니는 인내와 선량함만 있으면 적절한 보상을 통해 유혈 사태 없이 사악한 파벌들을 근절하고, 왕정으로 되돌아가려는 잔당들의 야망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마키아벨리의 우려대로, 이러한 소데리니의 순진한 예상과 달리 1512년 피렌체가 카를5세 군대에 정복된 뒤 살아남은 왕정의 잔당들은 소데리니를 제거하고 다시 전제정을 복원하고 만다.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고대 역사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일단 전제정에서 공화정으로 이동이 이루어지면 무엇보다 브루투스(기원전 6세기 에트루리아 왕 타르퀴니우스를 내쫓고 로마 공화정을 세운 인물. 집정관이었던 그는 타르퀴니우스 복위 음모에 가담한 자신의 아들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의 아들들을 죽이는 것이 선결 과제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는 소데리니가 어리석기 짝이 없게도 도시의 자유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사소한 양심에 굴복했다고 보았다. 소데리니는 ‘브루투스와 같은 지혜를 소유하지 못한 결과’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동료 시민들을 ‘노예 상태’에 빠뜨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잔혹한 조치를 옹호했다고 해서 그 점만이 부각되는 것이 마키아벨리에 대한 중대한 오해 중의 하나이다. 오히려 마키아벨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볼 때 그가 사태에 관한 뛰어난 현실주의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음이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뛰어난 군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론하는 체사레 보르자는 피렌체 국경 지역에 새롭게 등장한 위협적인 군사적 강자였다.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로 태어나 추기경이 되었으나, 성직자 신분을 버리고 칼을 잡아 속세의 군주가 된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1502년 12월 로마냐 통치를 담당하던 보르자의 부하 레미로 데 오르코의 강압적인 통치에 로마냐 시민들이 분노를 폭발시키자 보르자는 중대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오르코의 잔인한 폭정 때문에 눈 덩이처럼 불어난 시민들의 증오심은 로마냐의 지속적인 안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보르자는 놀라운 기민함으로 이에 대응했다. 그는 즉시 오크로를 소환했고, 나흘 후 그의 몸이 두 동강이 난 채로 광장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시체는 모든 시민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그곳에 계속 방치되었다.
이 사례에서 마키아벨리는 보르자가 오로지 공과에 따라 부하들을 완벽하게 통제했으며 전광석화와 같이 재빠르고 단호하게 일을 처리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도 마키아벨리는 음모적이고 신속한 살해 명령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 한 사람을 희생시킴으로써 로마냐의 무질서를 효율적으로 방지했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도덕, 즉 도덕과는 무관한 것이며 윤리적인 행위나 선악이 가치 기준일 수 없으며, 국가를 존속시키는 수단이라면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을 때 마키아벨리가 정치가들이 행하는 모든 잔혹한 조치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정치 행위란 본질적으로 도덕적 판단에서 벗어나 그 행위의 효율성과 유용성이 최고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보았을 때 정당화될 수 있는 정치 행위의 목적은 공화정의 건설 및 존속이나 시민 자유의 수호와 같은 가치들이었다. 게다가 마키아벨리가 옹호했던 군주의 테러 조치는 그러한 조치가 더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였다. 마키아벨리에게 군주란 원칙적으로 잔인하다는 평판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지나친 자비심을 베풀어 혼란을 초래하고 약탈과 유혈 사태를 빚게 하기보다는 잔인함을 보여 주어 무질서를 진압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자비로운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살아있다면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폭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군주론’의 구절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한 일견 반도덕적이고 악명 높은 조언들은 마키아벨리가 외교관으로서 목격했던 당대 군주나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의 획득, 유지, 행사를 둘러싸고 벌였던 투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사악함과 기만성이 드러났다면 이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 현실이 그러한 원리에 따라 전개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마키아벨리가 통치자들이 내세우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테러적 방법을 ‘미덕’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켰다는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승렬 LC교육연구소장
〈심화 학습〉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도덕을 위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명제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예를 들어 찬반 토론을 해 봅시다. |
▼공화정 옹호에 나섰던 마키아벨리
국가안위 앞에서 모든 수단은 정당할까▼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다.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 가운데 하나는 ‘로마사 논고’이다. 마키아벨리는 만약 로마가 성공을 거둔 비결을 발견할 수 있다면, 피렌체 역시 그런 성공을 또다시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가 이룩한 업적의 비결을 단 한 줄로 요약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일찍이 도시국가들이 자유롭지 않았다면 결코 지배와 부를 증진시킬 수 없었다.”
우선 고대 아테네는 페이시스트라토스의 폭정에서 해방된 뒤 100년이 지나는 동안 눈부시게 번영했다. 로마도 왕의 통치로부터 자유로워진 뒤 얼마나 위대해졌는가?
마키아벨리가 자유를 강조하면서 무엇보다 염두에 둔 것은 위대함을 추구하는 국가라면 반드시 정치적인 예속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국내적으로는 독재자로부터의 예속으로부터, 국외적으로는 제국의 힘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뜻했다. 이것은 피렌체가 위대해지려면 국내에서 독재를 없애고 프랑스, 스페인, 독일 같은 강대국들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군주정을 완전히 배제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그랬듯이 대중 지배의 지속이 군주제 형태의 정부와 얼마든지 병립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군주정보다는 공화정 체제를 더 선호했다.
모럴리스트인가, 마키아벨리스트인가.
로마의 저술가이자 도덕주의자인 키케로는 ‘도덕적 의무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홀로 통치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고 결심한 로물루스(레무스라는 쌍둥이 동생을 죽이고 로마를 건국했다고 한다)가 자기 동생을 살해했을 때, 그의 행동에 대한 자기 변호는 전혀 합리적이지도, 그럴듯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이에 마키아벨리는 정반대 주장을 펼친다.
“분별 있는 지성인이라면 아무도 왕국의 조직이나 공화국 건설을 위해 사용된 불법적인 행동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런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할지라도, 그는 결과에 의해 용서받아야 한다. 로물루스의 경우처럼 결과가 좋으면 누구든지 항상 용서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건설을 위해 폭력을 행한 자가 아니라 파괴를 위해 폭력을 행한 자이기 때문이다.”
조은정 LC 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