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를 읽어주자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한다.
“선생님, 아빠 염소는 어디 갔나요?”
선생님은 좀 당황했지만 좋은 질문이라고 말하고 나서, 아이들을 둘러본다.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온다.
“돈 벌러 갔어요.”
“회사에 갔어요.”
“병원에 입원했나 봐요.”
“외국에 출장 갔어요.”
그런데 한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너무나 색다른 대답이라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그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선생님이 들고 있는 책의 삽화 속에 나오는 벽에 걸린 염소 사진을 가리켰다. 아이는 한 달 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그 아이는 사진을 ‘영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책을 읽어주고,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이처럼 유치원 아이라도 책을 읽고 나면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이런 욕구를 해결하게 도와주는 것이 독서지도다.
책을 읽고 난 아이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무언가 이야기해 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아이의 두뇌 속에서 훌륭한 반응이나 질문이 나오기는 어렵다.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기 전에 우선 아이들이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주는 것도 좋다.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처음에는 부모가 묻고 아이가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다 차츰 아이가 묻고 부모가 대답하는 패턴으로 바꿔 나간다.
둘째,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시험 보는 것처럼 구체적인 질문이 된다면 아이는 곧 싫증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이야기하는 줄거리나 판단이 틀릴지라도 지적하거나 고쳐주지 않는 것이 좋다. 독서교육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다양한 답을 찾아보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질문 수준이 아이의 독서 수준
같은 동화라도 엄마의 질문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교육 효과도 달라진다.
아이들은 여섯 살만 돼도 사회적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도덕성에도 눈을 뜬다. 그래서 어느 것이 옳은지에 대한 갈등을 겪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현명함과 어리석음, 정의와 불의 등의 도덕적 가치관에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어 ‘우렁색시’를 읽어주고 나서 엄마와 아이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다면 매우 유익하다.
“우렁이 색시는 왜 부잣집으로 가지 않고 가난한 총각네 집으로 왔을까?”
“총각이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지.”
“왜 총각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니?”
“총각은 늙은 엄마에게 잘했잖아?”
“그래? 늙은 부모에게 잘하면 좋은 사람이구나!”
“응, 그런 거 같아.”
이쯤 되면 아이는 ‘효도하면 복 받는다’는 가치관을 엄마가 강조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게 된다. 그러나 많은 부모님들이 질문을 ‘줄거리 알기’나 지식교육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확산적 사고를 길러주는 질문들
“흥부가 착하니? 놀부가 착하니?”
“흥부.”
“넌 흥부처럼 될래? 놀부처럼 될래?”
“흥부.”
“아이구 똑똑한 내 새끼!”
책 읽어주고 나서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면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제대로 된 독서지도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없다. 독서교육은 좀 더 책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가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런 질문이어야 아이들의 사고력을 확장시켜 줄 수 있다.
사람의 눈은 시력이 약해서 별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보면 별을 볼 수 있다. 엄마의 독서지도는 바로 망원경으로 별 보는 법을 알려주듯 책보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아이의 두뇌가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엄마의 질문으로 열어주는 방법이다. 그런데 엄마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질문으로 끌고 간다면 아이의 두뇌는 확산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흥부는 왜 재산을 받지 못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대답한다.
“부모님이 동생하고 나누어 가지라고 말하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흥부가 달라고 안 했어요.”
“놀부는 주고 싶은데, 부인이 주지 말라고 해서요.”
“흥부는 자식이 많아서 준 걸 금방 까먹었어요.”
아이들에게 한 가지 대답만 강요하면 아이들의 두뇌는 억압당한다.
엄마의 독서지도는 두뇌의 힘을 키워주는 활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mynam@kred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