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비공개 대화방에서 상대방과 일대일로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면서 제3자를 비방했다 하더라도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전파 가능성이 있으면 비밀대화도 명예훼손”=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인터넷 공간이나 일상의 일대일 대화에서 상대방에게 제3자를 비방하는 말을 비밀스럽게 했더라도 상대방이 그 내용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2006년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한 여성을 꽃뱀으로 묘사한 소설을 게재했다. A 씨는 “이 소설의 99%는 실화에 근거했다”며 꽃뱀으로 묘사된 여성이 같은 블로그의 여성 회원 B 씨임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
얼마 뒤 C 씨가 인터넷 일대일 쪽지를 통해 “꽃뱀이 누구냐”고 묻자 A 씨는 B 씨의 블로그 필명(筆名)을 알려줬다. A 씨는 “B 씨의 실명과 주소 전화번호도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공연성 인정 여부가 쟁점=이번 재판의 쟁점은 명예훼손죄의 구성 요건인 ‘공연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A 씨가 일대일 비밀대화를 통해 C 씨에게만 알려준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
검찰은 공연성이 있다고 보고 A 씨를 기소했지만 1, 2심 법원은 “일대일로 나눈 비밀대화여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화의 비밀성보다는 전파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대법원은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알렸다 하더라도 얘기를 들은 상대방이 다시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을 충족한다”며 “일대일로 이뤄진 인터넷 비밀대화라는 이유만으로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피고인과 C 씨가 대화하게 된 경위와 대화 후 C 씨의 태도, 세 사람의 관계 등 모든 사정을 심리한 뒤 과연 C 씨가 말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비밀대화라도 공연성 여부 다를 수 있어”=명예훼손 사건에 밝은 변호사들은 대법원 판단에 수긍하면서 비밀대화도 상황에 따라 공연성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찬희 변호사는 “특정인이 상대방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어머니를 심하게 비난했다면 상대방이 이 말을 여기저기 전파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공연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특정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 사이에 공통의 관심이 되고 있는 인물을 비방했다면 전파 가능성이 높아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서성건 변호사도 “상대방이 반드시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상황으로 볼 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