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시험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는 모범답안을 달달 외우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논술대비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예 주제별 의견별로 정리된 모범답안을 20∼30개 골라 외운 뒤 실전에서 엇비슷해 보이는 논제가 나오면 외운 걸 고스란히 베껴 쓰는 학생도 많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하면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 강호영 서울 성남고 교사의 ‘별난 논술수업’
100번 강의 듣기보다
한번 써보는게 낫다
글쓰기→토론 ‘거꾸로 수업’
서울 성남고 국어교사인 강호영(41) 씨는 이렇게 모범답안을 외우는 방식에 대해 “가장 쉽고도 위험한 대비법”이라고 잘라 말한다. 무료 논술교육 사이트인 ‘강호영의 논술교실’(my.dreamwiz.com/ghdud99)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모범답안을 외우게 되는 건 평소 자기 글을 쓰는 훈련을 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한다. 논술이 수능처럼 절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평소 논술문을 꾸준히 쓰지 않거나, 글 쓰는 것이 귀찮아 학원 강의를 듣는 것으로 때우려 한다면 결국 자기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게 돼 모범답안에 기댈 수밖에 없다.
강 교사의 논술지도 철학은 ‘백문불여일기(百聞不如一記)’, 다시 말해 ‘100번 듣는(외우는) 것보다 한 번 쓰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의 논술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매 시간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500∼600자의 글부터 써야 한다. 대부분의 논술토론 수업이 ‘강의-토론-글쓰기’ 순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글쓰기-토론-읽기자료 배부’의 순으로 진행된다는 게 강 교사 수업의 특징이다.
“학생들이 강의 내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먼저 쓸 수 있는 연습을 시키는 거죠. 교사가 강의를 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나 토론을 시키면 결국 똑같은 얘기들만 나오거든요. 수업 전주에 미리 주제를 알려주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문 책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찾아오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생각을 쓰고 말하게 돼요.”(강 교사)
이런 수업방식을 통해 학생들은 제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쓰게 됐다. 토론 때 나오는 의견도 풍성해져 다른 친구들이 가진 다양한 관점을 배운다.
강 교사가 진행하는 토론식 논술수업은 1, 2학년 각 100여 명(인문계, 자연계 50명씩)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심화반 수업이다.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다 보니 ‘논술을 피해서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해 수업 참여도가 높다.
강 교사에겐 ‘최소한이 곧 최대한’이란 신념이 있다. 교사가 최소한으로 참여할수록 논술수업 효과는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강 교사는 수업에서 늘 ‘진행자’ 역할만 한다. 80분 수업 가운데 20분이 글쓰기에, 40분이 학생들의 자유토론에 할애된다. 토론이 끝나면 미리 써온 읽기 자료를 나눠주고, 그날 쓴 글을 모은 뒤 첨삭지도를 해 돌려준다.
강 교사는 이런 토론식 논술수업을 받기 어려운 학생이라면 ‘독서논술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이 5∼10명 모여, 팀장을 정하고 매주 만나 토론식 스터디를 진행하는 것. 연초에 시험과 방학기간을 제외한 연간 모임 날짜를 미리 정한 다음, 논술 참고서를 한 권 정해 토론주제를 선정한다. 이때 주제와 관련된 책을 선정해 매주 미리 읽어오면 배경지식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읽기 자료는 매주 돌아가면서 한 사람이 만들어오는 편이 덜 부담스럽다. 스터디 멤버들이 쓴 글은 서로 돌려 읽으며 첨삭한다. 가끔씩 글을 모아 학교 지도교사에게 가져가거나 무료 첨삭사이트에 올려 전문가의 첨삭을 받으면 실전감각을 기를 수 있다.
“논술은 스스로 글을 써보는 적극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논술이 국어 영어 수학처럼 절실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2008학년도 대학별 논술고사 반영비율 표를 찾아보세요.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웃음).”(강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