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 입력 2008년 2월 18일 02시 56분


실제 있었던 사실만 기술?

현상 뛰어넘는 진실 탐구?

올바른 역사인식은 뭘까요

역사의 진실 판단기준은

왜 시대에 따라 변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사실’이라 부르고, 무엇을 ‘진실’이라 부를까요? 과거를 살아보지 않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는 우리가 과연 무엇이 사실인지 가늠할 수 있을까요? 역사는 과학적이어야 할까요, 도덕적이어야 할까요?

위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역사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건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이 싫어하는 사람처럼 될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고 주장하는 동북공정 사학자들이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는 축복이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사학자들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역사 속에 나오는 전투와 갈등, 혹은 이순신, 계백, 나폴레옹 등의 역사적 인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면 굳이 역사가 아니라, 영화나 소설을 좋아해도 됩니다. 그런 재미있는 얘기는 영화나 소설에 훨씬 많이 나오니까요. 이런 경우에 여러분은 역사를 진실이나 사실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박진감과 서스펜스를 주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셈이므로,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사학자처럼 승리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E H 카처럼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어머니를 보거나 세종대왕에게서 삼촌을 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고종황제에게서 친구를 연상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인식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인식이 되는 것이지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혹은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 함부로 떠들어댈 수도 없을 겁니다. ‘못된’(?) 일본과 중국을 미워하기보다는 ‘왜 일본과 중국이 그렇게 주장하는가’를 이해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공감할 수는 없어도 말입니다.

역사를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면 아래 부분을 계속 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계속 서스펜스 소설이나 활극으로만 이해하고 싶다면 아래 글은 지극히 재미없는 글이 될 테고, 분명히 시간 낭비에 그칠 테니 읽지 마십시오.

카는 역사에서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은 수없이 많은데, 그 사실 가운데 어떤 것을 역사책에 집어넣고, 어떤 것을 역사책에서 뺄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의 몫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역사를 읽거나 보거나 듣기에 앞서 내 앞에 역사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그것을 누가 정한 것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카가 지적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파악해야 할 역사는 사실 그 자체여야 할까요, 아니면 진실이어야 할까요?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진실은 사실에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가치 판단, 즉 가치관을 개입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고민과 갈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를 파악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역사, 즉 과거의 진실을 뒤돌아보는 일은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진실에 따라 역사가 바뀔 수 없다면 역사는 더는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역사는 사실만 담아야 할까요, 진실을 담아야 할까요? 역사는 고정불변해야 할까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에 진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난 공산혁명이 유럽에서는 거부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전파된 것이 매우 진보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어떻게 변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보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의 과거, 혹은 우리의 과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그 평가는 줄곧 똑같았습니까, 변해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평가한 과거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변화에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그것은 움직인다.’

이수봉 타임에듀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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